국내 언론에서 외면 받는 '아르헨 언론 전쟁'


언론인이 되면 이 말을 참 많이 듣게 된다. 많이 들으니 남들에게도 많이 해줄 터이다.

不可近 不可遠(불가근 불가원)

가깝게도, 멀게도 지내지 말라는 금언이다. 취재원과도 광고주와도 정치권력과도, 심지어 독자들과도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약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언론이란 영역이 제 3의 지역에서 '관망'과 '조망'을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참견하고 어설프게 이끄는 시늉을 하거나 잘못된 길로 편향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면 역사의 '증인'이 아닌 '죄인'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언론인과 학자의 이런 인식은 실제 언론 종사자(언론인과 구분해서 말하는 이유는 나중에 따로 설명하겠다)와 정치인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 언론인과 달리 언론 종사자는 언론 조직 자체를 역시 살아 남아야 하는 생존게임의 참여자란 인식이 깊이 박혀 있고 정치인들은 언론의 생존 게임을 이용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과 언론과의 거리 관계가 희미해지는 상황은 대부분 정치권력이 강대해졌을 때부터 나타난다. 정치권력은 언론권력을 제 3의 객관적인 시각인 양 포장하면서 뒤에서 정치 선동을 부추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아서 이용당하는 듯이 보여도 역으로 정치 권력을 숙주로 이용하기도 한다. 정치 권력은 필연적으로 힘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때 언론은 다른 숙주를 찾아 떠나거나 매몰차게 죽은 권력을 짓밟는 행태를 보인다.

그러다 자신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닥치면 크게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머릿 속에서는 군사독재를 거쳐 권위정부를 지난 뒤 일어났던 언론인들의 생존 게임을 상기하기 바란다.

1. 사과하고 반성하는 척 한다. 물론 표상적으로만 그렇다. 여지껏 진심으로 뉘우치는 언론인을 본 적이 없다.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 사람들이 지금 뭐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아라. 조직이 사과했을 뿐 개인적인 사과는 단 한 건도 없었다.

2. 어쩔 수 없었음을 설명한다. 정황상, 상황상 자신들의 힘은 미약했으며 당시 결과가 이렇게 될줄은 아무도 몰랐다는 식이다. 애초에 잘못을 한다고 생각을 못했으니 결과적으로 지금 잘못이라고 비난하면 억울하다는 식이다.

3.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며 대든다. 세무조사하면 언론탄압이라고 하고 법을 개정해 독과점을 해소하자면 시장질서를 위배한다고 하고 정치와의 유착을 꺼내면 옛날 이야기를 들춘다고 고리타분하다고 반박한다. 뿌리부터 '수사학'으로 무장돼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상황이든 변명하고 반박하고 해명하는 것이 익숙하며 논점을 와전시키고 희석시키는 재주를 갖춘 사람들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가운데 아마도 보수언론 관계자라면 우리나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입꼬리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설픈 블로거 하나가 또 헛소리한다고 아예 위에 제시한 준비된 레퍼토리 꺼내려고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미안하게도(?) 이 이야기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연계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말이다. 이 나라는 군사독재를 거쳐 지금은 여성 대통령이 중도 좌파 성향의 정책을 펴면서 기존 언론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르헨 대통령 "신문.잡지 가판대서만 팔아라"[연합뉴스]

아르헨티나, 공중파-케이블TV 겸영 금지[연합뉴스]

아르헨티나, 정부광고 편중 시비[연합뉴스]

아르헨 '대통령-언론 전쟁' 어디까지[연합뉴스]

아르헨 대통령과 유력 양대 신문사 대립[연합뉴스]

아르헨, 기득권 신문과 ‘전쟁’[경향신문]

정의는 결국 실현됐다[한겨레신문]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의 조치들이 시장질서에 위배되는 경향이 보인다. 예를 들어 기득권 신문에 광고를 축소하고 친정부 신문에 광고를 몰아준다거나, 신문용지를 공급하면서 거대 신문에는 싸게, 작은 지방 신문에는 비싸게 용지대금 정책을 써온 용지공급 사업자를 사실상 국유화 해 아예 용지 대금 자체를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든가 하는 조치가 그렇다.

9일에는 아예 가판대를 제외하고 슈퍼마켓 등 상업용 시설에서 신문과 잡지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포고령에 서명하는가 하면 8일에는 공중파 TV와 케이블 TV 경영 금지 방침을 내세워 1년 안에 양쪽 가운데 하나를 매각해야 한다는 방침까지 밝혀 대놓고 아르헨티나 최대 미디어 그룹인 그루포 클라린과 각을 세우고 있는중이다.

아르헨티나란 나라가 멀게 느껴지다가도 군정을 거쳐 민정으로 이양되면서 벌어지는 이런 군정에 기여한 기득권 언론에 대한 징벌적 조치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이면의 정치권력과 언론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더구나 '조망자', '관찰자', '비평자'로서의 역할을 벗어나 언론에게 '시장 참여자', '권력자'의 적극적인 역할론을 과연 기대해야 하는지, 심지어 선출되지 않은 그들이 권력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놔두어야 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며칠 전 KBS 방송사 기자가 현직 국회의원에게 'X만한 새끼'라는 욕을 공개적으로 했다던데, 사람들이 좀 놀랐나보다. 그런데 나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나 역시 현직에 있을 때 술자리든 어디든 배포로 무장한 기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욕을 해대고 경찰관에게 발길질하는 상황을 목격하기도 했다.

연합뉴스로부터 송고를 받고 있는 국내 신문들이 유독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아이템으로 다루지 않는 이유는 이미 그들이 '시장 참여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건의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곤혹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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