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미래의 컴퓨터는 AR 공간이 될 것”

매주 돌아오는 회의 시간. 전국 각지에 있는 팀원들이 모두 ‘가상회의실’에 모인다. “우리 저번 회의 때 어디까지 진행했는지 확인해볼까요?” 이들은 지난주 회의 ‘현장’을 불러낸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은 순식간에 포스트잇과 자료가 가득한 아이디어 룸으로 변신한다. 스페이셜(Spatial)이 개발하고 있는 ‘증강현실(AR)’ 기반 원격 협업 플랫폼의 모습이다.

스페이셜은 3D 소프트웨어 ‘범프탑’을 2010년 구글에 매각한 아난드 아가라왈라 대표와 MIT 미디어랩, 삼성전자 최연소 수석연구원 출신 이진하 공동창업자가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3D 아바타와 음성을 이용해 가상공간에서 협업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고 있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홀로렌즈’나 ‘매직리프’ 등 AR 헤드셋을 착용하면 실시간으로 3D 그래픽이 나타난다. AR 기기가 없어도 웹을 이용해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인정 받아 설립 2년 반 만에 우버, 징가, 링크드인 창업자 및 삼성넥스트, 카카오벤처스 등으로부터 총 90억원을 투자 받았다.

|스페이셜의 가상회의 공간은 이렇게 생겼다.

지난 4월2일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이진하 스페이셜 공동창업자 겸 최고제품책임자(CPO)를 만났다. 이진하 CPO는 “컴퓨터가 우리 환경을 바꿨지만 협업에는 한계가 있다. 아직도 사람들은 종이를 출력하고 포스트 잇을 쓰는 등 물리적인 공간에서의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라며 “집단지성을 활용할 때 중요한 것은 스크린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googletag.cmd.push(function() { googletag.defineSlot('/6357468/0.Mobile_Article_intext_1_300_250', [300, 250], 'div-gpt-ad-1468307418602-0').addService(googletag.pubads());googletag.pubads().collapseEmptyDivs();googletag.pubads().enableSyncRendering();googletag.enableServices();googletag.display('div-gpt-ad-1468307418602-0'); });

2D에서 3D로 가면 더 넓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컴퓨팅의 미래는 스크린이 아니라 공간으로 가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공간으로 가면 여러 명이 같이 쓰는 컴퓨팅의 미래가 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 ‘실리콘밸리의 한국인2019’ 강연 내용 중

틀을 넘어서기 위해 택한 AR

유년시절 이진하 CPO는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흥미는 이공계 진학으로 이어졌다. 도쿄대 전자공학과로 유학을 간 것도 순전히 만화 ‘나루토’ 때문이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T 미디어랩에서 예술·과학 분야를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컴퓨터가 가진 한계를 여실히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예술, 공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계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몰입의 경험, 표현이 어려웠습니다. 타자기 등에 (생각을) 가두는 UI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하려면 스크린을 넘어선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다. 컴퓨터 학자 앨런 케이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 말했던 것처럼, 이진하 CPO는 미래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투명 스크린으로 만든 컴퓨터 너머, 허공에서 정보를 잡고 조작할 수 있는 ‘스페이스 탑’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하던 그는 2013년 테드 강연을 계기로 아가라왈라 대표와 만났고, 그 만남은 창업으로 이어졌다.

|’실리콘밸리의 한국인2019′ 행사 직후 이진하 CPO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제공=이진하 CPO

스페이셜의 가상회의실은 장점이 명확하다. 물리적인 기기에 구애 받지 않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협업’이 가능하다. 공간 자체가 컴퓨터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료 검색부터 검색 과정, 결과 등을 모두가 동시에 공유할 수 있다. 개인 PC나 스마트폰에 있는 콘텐츠도 앱을 통해 가상회의실에 손쉽게 옮길 수 있다. 손가락으로 사진을 누르고 회의실로 ‘던져 넣으면’(AR 토스) 회의실에 사진이 뜨는 식이다.

회의실은 저장이 가능하다. 필요한 방은 언제든지 불러오기가 가능하다. PPT로 단순히 자료를 시청하는 게 아니라, 각 방으로 다함께 ‘텔레포트’해서 각자가 준비한 아이디어 룸을 볼 수도 있다.

이진하 CPO는 기존의 회의가 ‘결론’을 공유하는 경향이 짙다면, 가상회의실은 ‘과정’을 공유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라마다 수용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기술이 문화를 바꿔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의 문화, 보고 문화가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계에 사람이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한 기술을 지향합니다. 생각의 흐름을 잘 따라서 서포트해주는 컴퓨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스페이셜은 AR, VR 기기 및 모바일, PC 등을 모두 지원한다. 여러 기기를 하나로 잇는 경험을 설계하고 있다. 실제 물리적인 환경에서 물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물성을 현실과 가깝게 구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배우지 않아도 편하게 쓸 수 있는 UX를 추구한다. 현재 간단한 손동작으로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데, 이 방식은 더 쉬운 형태로 가다듬을 계획이다. 구글, 우버 출신 디자이너가 UX를 도맡고 있다.

이진하 CPO는 “결국 큰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어떻게 만드느냐의 문제”라며 “심리스한 AR 경험을 하나의 플로우로 구현하는 것이 성공의 키라고 보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강점이 있다고 자신한다”라고 말했다.

AR로 인해 과도한 데이터가 요구되는 것은 아닐까. 통신 환경에 따른 제약은 없을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진하 CPO는 “아이러니한 게, 화상회의처럼 영상을 전송하면 굉장히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라며 “그러나 아바타는 3D모델이 이미 홀로렌즈 안에 저장돼 있기 때문에 기기가 아바타를 만들어낸다. 화상 채팅보다도 데이터 전송량이 적다”라고 말했다. 3D 아바타가 아니라 실시간 홀로그램이 구현된다면 지금보다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겠지만, 현재 스페이셜의 솔루션은 적은 대역폭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스페이셜 솔루션 시연 영상(https://youtu.be/PG3tQYlZ6JQ). 포털사이트에 따라 영상이 지원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인터넷 검색을 많이 할 거라 생각하고 웹 브라우저를 많이 신경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작업을 컴퓨터로 빠르게 처리하는 인터페이스를 좋아하더라고요. AR 경험을 훌륭히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모바일, 웹 등 플랫폼과의 연결성을 강화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현재 스페이셜을 ‘체험판’으로 이용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글로벌 자동차기업 포드의 벤처 인큐베이터 조직인 포드X가 대표적이다. 지난 1월, 바비인형으로 유명한 미국 완구업체 마텔은 스페이셜을 유료로 전환했다. 스페이셜의 첫 번째 유료 고객이다. 연내로 마텔 같은 유료 고객사를 5곳 이상 확보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플랫폼이 유용하다 해도 하드웨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업계는 AR 헤드셋이 대중화되기까지 최대 5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스페이셜이 B2B 시장에 먼저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이진하 CPO는 “홀로렌즈2는 장시간 착용해도 편안하고, 시야각도 넓어졌다. 소비자가 쓰기까지는 시간이 걸려도 직장에서 모니터 대신 채택할 정도의 수준은 이루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킬러 앱이 없어 상용화가 더디지만 우리가 첫 번째 킬러 콘텐츠의 사례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의견 0 신규등록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