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다시 상대하고 싶지 않은 회사들

우리 가끔 조금 전까지 매우 복잡해 보였던 문제가 갑자기 머리 속에서 확실해지는 때를 경험하곤 한다.
일명, ‘자각’이라고 불리는 이런 순간은 그리 쉽게 찾아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중 언젠가는 한번쯤 찾아오기 마련. 아마도 자각의 순간은 주로 깊이 있고 철학적인 글을 읽거나, 아니면 설득력 있는 연설자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 오는 찾아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 이런 자각의 순간이 대기업의 서비스나 제품을 이용하고 있는 중에 찾아오기도 한다. 말하자면, 자신이 대기업에 의해 부당하게 ‘이용당했다’고 생각됐을 때, 혹은 기업이 자신을 보기 좋게 이용했다고 깨달을 때, 바로 이때가 소비자가 경험하는 자각의 순간이라 하겠다.

기업이 소비자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일은 기업들이 워낙 자연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거의 수개월 동안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다들 다음의 예를 읽어 보고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파악해 보기 바란다.



사례 1:

아내에게 휴대폰을 사주기 위해 휴대폰 가게에 들렀다. 그곳의 점원은 최근 새로 나온 신제품을 소개하면서 이 휴대폰을 사면 통신 요금이 할인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만 보니 이 휴대폰은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과 같은 통신 서비스를 받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이용하고 있는 휴대폰도 통신 요금 할인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점원에게 물어봤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 휴대폰도 통신 요금 할인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랬더니 점원은 물론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통신 회사와 휴대폰 회사는 기존의 고객들에게 요금 할인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던 것 아닌가. 만일 내가 이런 식으로 우연히 할인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다면 아마 평생 할인 혜택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사례 2:

회사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DSL 라인을 신청했다. 모든 설치 작업이 끝난 뒤에 살펴보니 DSL 회사가 판매한 라우터가 우리 작업 환경에 맞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래서 DSL 회사에 전화를 걸어 다른 라우터를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회사는 라우터 교환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원하는 라우터를 제값 그대로 구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들은 남아도는 라우터의 재고 처리를 위해 이런 ‘교환 불가’ 정책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위의 두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 아니다. 실제로, 각각 셀룰러 원(Cellular One)과 코바드 커뮤니케이션(Covad Communications)의 서비스를 받은 소비자들의 증언이었다.

다이렉트 마케팅 회사인 브랜 월드와이드(Brann Worldwide)가 올해 내놓은 설문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절대 다수의 기업들의 이런 행태에 굉장한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은 기존 회사와 거래를 끊고 다른 회사 서비스를 받을 것을 심각하게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브랜 월드와이드는 1800명의 미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에서, 40%의 소비자들이 밝힌 ‘다시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회사의 특징’들을 공개했다.

  • 제품의 하자 때문에, 혹은 이해가 불가능한 설명서 때문에 기술 지원을 요청했더니 돈을 받는 회사
  • 제품 혹은 서비스 문제 때문에 전화를 걸었는데 A/S 담당자가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못하고, 나중에 다시 전화도 걸지 않는 회사
  •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해 할인/경품 서비스를 제공할 때 기존의 고객에겐 알리지도 않는 회사
  • 포인트, 혹은 환불 제도를 통해 고객이 물건을 구입하게 해놓고 정작 나중에 포인트 요금이나 환불 서비스를 받으려고 하면 물건이 바닥 났거나 행사기간이 지났다고 잡아 떼는 회사


물론 이런 회사들이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일을 당하고 나면 자신들이 ‘바보 취급 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 이런 짓을 저지르는 회사들은 소비자들을 바보로 아는 것일까? 아니면 신규 고객과 기존 고객을 동시에 만족시키긴 너무 귀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은 기존의 고객들은 다른 회사로 옮겨가기 귀찮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느 경우든 괘씸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아니, 괘씸한 것이 아니라 이런 회사들은 놀랍도록 멍청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때에는 소비자들이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하기 전에 가격을 비교하고 그 회사에 대한 불만을 파악하기 매우 용이하다. 만일 자신이 생각해 두었던 회사라고 하더라도 인터넷에서 소비자 불만이 범람하거나 가격/서비스 경쟁력이 크게 뒤쳐지는 것을 발견할 경우 소비자들은 다시 거들 떠 보지 않는다.

인터넷은 단지 소비자들이 기업의 허점과 단점을 발견하기에만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은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보다 많은 배려를 베풀 수 있는 보다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아까의 셀룰러 원은 휴대폰 요금이 인하됐을 경우 자사 휴대폰 고객에게 요금 할인 사실을 이메일로 간단하게 공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코바드의 경우 역시 이메일로 고객에게 다양한 라우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었고, 이미 자사의 서비스를 구입한 고객에게는 남아도는 네트웍 상품을 무료로 제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은 기업들에게 소비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수의 기업들은 과거의 근시안적인 수익 확대를 위한 못된 인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운로드
의견 0 신규등록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