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창작’, 참으로 이질적이면서도 거부감이 드는 단어 조합입니다. 코끼리나 돼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창작을 한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붓을 들고 종이에 물감을 뿌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럼, 인간의 뇌를 모방한 인공신경망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코끼리나 돼지는 ‘인간의 창작’이라는 영역에 지능적으로 결코 접근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으나, 인공지능은 언젠가 인간을 뛰어넘는 것이 당연할 거라는 막연한 예측으로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l 구글 브레인 마젠타 프로젝트(출처: https://magenta.tensorflow.org/)
인간은 엔신스에 활용하는 데이터베이스보다 더 방대한 정보와 영감을 창작으로 연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 인간의 창작 능력이 인공지능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말하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다만, 인간과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창작에 대한 의미가 다르다면, 창작이 지향하는 목적도 다르다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은 창작하는 인공지능을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마젠타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음악을 만들어 인간과 빌보드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인식이 발생하는 이유는 체스, 바둑, 포커 등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과 자웅을 겨루고, '인간을 뛰어넘었는지'에 대한 지점에 계속 관심을 둔 탓입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가장 쉽게 증명할 방법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창작하는 인공지능의 목적은 단순히 인간을 뛰어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악기의 등장은 음악가들에게 다른 의미의 영감을 줄 것입니다. 창작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작에 도움을 주는 것인데요. 이것이 창작하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목적이자 마젠타 프로젝트가 새롭게 작곡한 곡을 계속해서 선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음악 외에 인간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도록 고안된 인공지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요리에서 찾아보겠습니다.
l IBM 셰프 왓슨(출처: https://www.ibmchefwatson.com/)
셰프 왓슨은 자신이 개발한 요리를 맛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요리사가 자신의 영감을 새로운 요리에 담으려면 수백 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하고, 되풀이하는 동안 많은 양의 재료와 시간을 투입해야 합니다. 셰프 왓슨이 제시한 요리도 시행착오가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맛의 균형을 맞추고, 전 세계의 다양한 조리법을 제시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요리사를 돕습니다. 픽투레시피의 컴퓨터 비전 기술과 결합한다면, 요리사에게 훨씬 더 커다란 영감을 줄 수 있겠죠.
l 폰트조이 (출처: http://fontjoy.com/)
2015년, 어도비는 2만 개 이상의 서체로 구성한 데이터베이스를 딥러닝 방식으로 학습하여 비슷한 서체를 찾아내는 '딥폰트(DeepFont)'를 공개했습니다. 딥폰트는 모니터 속 서체뿐만 아니라 거리의 간판이나 전단지 등에 쓰인 서체를 찾아낼 수 있도록 고안되었습니다. 모든 서체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손글씨라도 최대한 비슷한 서체를 제안합니다.
딥폰트는 서체 구분하고, 찾아내기 위해서 폰트조이의 능력처럼 서체의 특성을 분석하여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합니다. 딥폰트 이전에 디자이너들이 간판의 문구에 쓰인 것과 비슷한 서체를 찾으려면 기억력에 의존하거나 찾을 때까지 서체 목록의 스크롤을 내리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딥폰트를 사용하면 그런 시간을 단축할 수 있죠. 그리고 간판과 전단지의 서체들을 더 많이 학습할수록 딥폰트는 서체의 특성을 더욱 정확하기 인지할 것입니다.
'그럼 셰프왓슨처럼 서체 특성으로 구성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서 인공지능이 직접 새로운 글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전 스포티파이의 개발자이자 현재는 배러 모기지(Better Mortgage)에서 근무 중인 개발자 에릭 번하드슨(Erik Bernhardsson)은 작년에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그는 5만 개의 서체를 수집하여 인공신경망에 학습시켰습니다. 그리고 해당 모델에 특정 서체를 완성하길 요구했는데, 인공지능은 자신이 학습한 것을 활용하여 번하드슨이 제시한 문제에 가장 근접한 서체를 만들었습니다.
l 에릭 번하드슨의 서체 실험
(출처: https://erikbern.com/2016/01/21/analyzing-50k-fonts-using-deep-neural-networks.html)
물론 실제 디자인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결과물을 내놓은 건 아닙니다. 그러나 학습시킨 서체를 통해 문자의 디자인을 인공지능이 인지한다는 걸 확인했고, 몇 가지 문자는 완벽히 이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이 디자인하지 못한 새로운 서체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실마리입니다.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는 디자이너의 요구에 따라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서체를 제시할 수 있겠죠. 상기한 딥폰트의 인식 능력으로 더 많은 서체를 흡수하고,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다면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서체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다듬어 내는 역할은 디자이너의 몫이 되겠죠.
- 전기신호를 사용하여 다른 악기의 소리를 흉내내거나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