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종종 듣는 질문이긴 하지만, 멋진 답을 돌려드리긴 어려워요.
“그런 방법이 있었다면 제가 해봤겠죠”라는 뻔한 농담만 하게 되죠.
위의 질문에 쉽게 답을 드릴 수 없는 이유는
– 모든 디자이너에게 통용되는 일반적인 발전의 방법론이라는 것이 있을리 만무하거니와, 디자인은 (다른 학문과는 다르게) 끊임없이 ‘개인의 취향’과 ‘태도’의 간섭을 포용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맞는 적절한 발전방향을 찾는 것 자체가 디자이너들이 ‘평생 고민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고민을 해 보았어요. UI/GUI 디자이너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 사소하게 실천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리스트업 해보았습니다. 다음의 내용은 ‘그래픽 UI 디자인’을 하는 주니어들을 위해 작성했으며, 정말 사소해서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습관으로 굳으면 도움이 되실 거에요.
1. 핸드폰을 영문으로 설정 (일문,불문도 좋음)
난이도 ★☆☆☆☆
– 설정에서 바꾸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쓰시는 앱들은 워낙 익숙한 내용이라 영어로 바꾼다고 해서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사용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으실 거에요.
– 이를 권장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부분의 UI/GUI 디자인의 토대가 라틴 문자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구글이든 애플이든, 대개 트렌드를 이끄는 쪽은 영어잖아요. 따라서, 우리가 하는 대개의 디바이스는 영문으로 볼 때 디자이너의 원래 의도를 최대한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텍스트가 강한 개성을 내뿜는 AirBnB 같은 앱들은, 한글로 볼 경우 디자이너가 의도한 Tone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지게 됩니다. 가장 활발한 담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디자이너/디자인그룹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문으로 폰을 쓰는 게 가장 쉬운 시도가 아닐까 합니다.
– 단순히 정적인 화면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디바이스를 영문으로 쓰는 것은 더 많은 정보를 주는데요. 폰을 영문(혹은 중문, 독문, 어느 것이든) 으로 바꾸는 순간, 감각적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는 느낌을 받으실 거에요. 그 중 가장 가치있는 것은, 앱을 사용할 때 “플로우, 인터랙션”등 UI, UX 적인 내용이 눈에 더 잘 보인다는 것이죠. 너무나 익숙해져서 존재 자체도 가물가물하던 UI,UX들이 보다 뚜렷이 인지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술계에서 말하는 ‘낮설게 하기’ 기법과도 같죠. 단순히 서비스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UIUX를 ‘분석’하는 관찰자의 입장으로 전환시켜 줍니다.
– 자신의 폰을 영어로, 혹은 자신이 원하는 언어로 바꾸는 것 만으로도 보다 입체적인 UI,UX를 경험하게 해 줍니다. 어려운 일 아니니까 해보세요. 운이 좋다면 외국어 실력이 늘 수도 있지 않겠어요?
*영문 디자인에 맞추어 버튼 크기와 간격 등을 정의하다보니, 한글 버전 디자인에서의 텍스트 크기/길이 및 여백 들이 원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조정되는 경우
2. 복습 혹은 이미지 트레이닝
난이도 ★★☆☆☆
– 맥을 쓰신다면, 드롭박스나 구글드라이브 등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폴더처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작업폴더를 클라우드 폴더로 설정하면, 언제라도 자신의 작업에 접근할 수 있죠. 용량이 문제이거나, 윈도우를 쓰신다면, 산출물을 export할 때 클라우드 폴더로 바로 보낼 수 있도록 설정하셔도 좋습니다.
– 밤에 쓴 글을 낮에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에요. 회사에서 몰입한 상태에서 작업물을 보는(만드는) 것과, 출퇴근길이나 침대 위 등 생뚱맞은 장소/상황에서 작업물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환경이 바뀌면 시선도 바뀌기 때문입니다.
– 공부할 때도 예습복습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회사 업무를 밖에서도 해야 하나’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남의 작업물 보듯” 설렁설렁 보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되실 거에요.
– 막상 해 보면 쉽지 않습니다. 케겔 운동처럼 – 습관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드롭박스 연동을 해 두었어도 막상 출퇴근 시간에 깜빡 잊고 말테지만, 걍 생각나실 때 한 번씩 해보세요. 나중엔 도움이 될 거에요.
3. 기성 서비스를 멀리하자
난이도 ★★★☆☆
–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서핑에 익숙해진 세대에게는 의외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네이버/카카오 등 대기업의 서비스는 우리 생활의 모든 접점에 존재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고는 쉽게 벗어나기 힘듭니다. 또한, 이런 서비스들은 개인의 사용이력을 입체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한 번 익숙해지면 다른 서비스를 쓰지 않게 만듭니다. (당연히 소비자를 이런 식으로 묶어두는 것이, 서비스 제공자의 욕심이겠죠.)
– 여기서 문제는, 이들 서비스들이 워낙 다양한 이해관계를 포함하고 있는데다 다양한 사용자들을 포용하려는 욕심 탓에 그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특이해진다는 점입니다. 불필요한 Share 기능이 있다던가, 수많은 Label이 붙어서 복잡한 화면이 되기 일쑤죠.
– 이 점이 주니어들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서비스의 뒷면 (이해관계자들이 했을 요청, 다양한 서비스로 연계/확장하려는 사업적인 복안, 오랜 기간의 운영으로 확장/변형된 비정상적인 구조 등) 을 추론하는 능력은 오랜 실무경험을 통해서만 생기는데, 이런 배경지식 없이 ‘디자인만으로’ 서비스를 이해하게 되면 UI/GUI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이 생길 위험이 있어요.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추론없이 최종 UI만으로 서비스를 판단하는 것은 정말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 팀장으로서, 이런 상황은 의외로 빈번하게 만나게 됩니다. “네이버도 그렇게 하는데요”라는 팀원들의 피드백을 듣게 되면 좀 난감해져요. 대개 상황을 살펴보면, 그 UI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서비스 내부의 사정 때문이지, 그 UI/GUI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되도록 구조가 단순한, Flow가 명쾌한, 단일 기능만을 처리하는 앱을 사용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대기업의 생태계에서 벗어나 보세요.
–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통화할 때, 가끔은 텔레그램을, 라인을, 스카이프를 써 보세요. 쇼핑하실 때도 아마존이나, 알리나 Fancy 같은 앱을 써보세요. 의외로 재밌고 새로운 편의성을 발견하실 수도 있습니다.
* 다양한 메뉴, 다양한 기능을 소화하기 위해 별도의 페이지가 필요하거나, 수많은 label을 붙여야 하는 대기업 서비스의 사례
4. 결국은 많이 경험하는 게 답이다
–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 괜히 고생스럽게 머리띠를 둘러 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한다고 디자인 감각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생활 속의 작은 여백을 활용해서 디자이너로서의 습관을 만들어 두시면, 언젠가는 다른 이들보다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시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가치디자인그룹 김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