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전기요금은 어떻게 결정될까?

‘가격’은 시장경제를 이끌어 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시장에서 제품 가격은 수시로 변화하고, 또 반대로 제품 가격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변화하기도 합니다.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AI) 사태로 계란 값이 화재인데요. 국내 양계장이 AI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공급이 붕괴되어 너무 높은 가격에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렸습니다. 하지만 미국산 계란 수입과 국내 비축 계란 반출을 통해 치솟던 가격은 조금씩 주춤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 가격은 서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수요, 공급, 가격 체계가 그때그때 작용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의식주에 이어 제4의 생활 필수재라 불리는 ‘전기’입니다. 



지난해 8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이슈가 되었습니다. 최대 11배가 넘는 누진제로 인해 전기요금 폭탄이라는 비난까지 제기되자, 정부는 뒤늦게 누진제 체계를 완화했습니다.


당시 전력시장 전체로 보았을 때, 2011년 9월 순환 정전 위기를 겪은 이후 수많은 발전소가 건설되어 전기공급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누진제 논란에도 누진제 완화를 쉽게 결론 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논란의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과거 석유파동부터 이어진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역사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너지 수급 안정과 가격 정책


1970년대 세계 경제를 흔들었던 석유파동은 우리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렇다 할 부존자원이 없었던 우리나라는 그 어느 곳보다 큰 타격이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정부는 국가 에너지정책에 대수술을 진행합니다. 동력자원부(現 산업통상자원부)가 1978년에 신설되면서 중장기적인 국가 에너지 안정정책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 에너지정책에 있어 최우선 가치는 다름 아닌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입니다. 에너지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수입 자원의 다양화에 주력합니다. 먼저 천연가스 주요 생산국들과 도입계약을 체결해가며 석유 중심의 에너지 소비패턴을 바꿔나갔고, 우라늄을 사용하는 원전도 이때부터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석유와 석탄, 가스 어느 한쪽에서 파동이 일어나도 다른 에너지로 완충시킨다는 전략이었죠. 이를 통해 국가 전체 에너지 구성을 다양하게 하는 것으로 ‘에너지 믹스’라고 합니다.


수급 안정에 방점을 둔 만큼 정부는 에너지 가격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가계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싸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에너지 가격 인상은 소비자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던 만큼, 소비자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가격을 억제해야 했습니다. 


 l 2016년 10월 기준 에너지밸런스 (출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보통계센터)


그중에서도 전기는 대표적인 가격안정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산업이 철강, 석유•화학에서 반도체, 전기•전자, 자동차로 고도화되고 가정에서의 전기사용량이 많아지면서 전기요금은 사실상 민생요금과 동일시 됐습니다. 


이제는 석유, 가스 등 1차 에너지보다 이를 이용해 가공한 2차 에너지인 전기가 더 많이 사용됩니다. 그만큼 전기가격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거대해졌습니다.


그나마 석유는 시장이 자유화됐고, 가스도 일부 판매시장에 경쟁이 도입됐지만, 전기는 여전히 가격변동에 있어 수요와 공급원칙보다는 정치와 정책논리에 결정되는 모습입니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 누진제 개편도 발전소 공급확대와 한국전력 흑자라는 배경이 있었지만, 실제 결정은 정치권과 사회적 여론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합니다.



 전력 도매시장의 존재와 계통한계가격

우리나라에선 전기가 수요와 공급 원칙으로 가격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위 설명은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혹시 전력거래시장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한국증권거래소에서 주식을 사고팔 듯,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기 거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l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 (출처: www.kpx.or.kr)


물론, 대부분의 소비자는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기를 구매해 본 경험이 없을 것입니다. 쉽게 설명해 우리가 전기를 사용한 후 해당 비용을 한국전력에 납부하는 것은 소매시장이고, 전력거래소를 통한 거래는 도매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전력 도매시장의 구성원은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사업자와 이를 구매하는 전기판매사업자로 구성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전기판매사업자는 사실상 한국전력이 유일합니다. 다시 말해 일반소비자들이 쓰는 전기는 한국전력이 발전사들로부터 사들여 우리에게 공급하는 것입니다.


전력 도매시장은 소매시장과 달리 매일 시간대별로 가격이 달라집니다. 실제 전력을 생산하기 하루 전에 전력거래소가 내일의 시간대별 국가 전력수요를 예측하면 그 예측량에 맞춰 각 발전사가 시간대별로 입찰합니다. 그리고 전력거래소는 가장 저렴한 발전소부터 수요예측치보다 조금 여유 있는 발전용량을 낙찰합니다.


전기 역시 국가 에너지정책과 마찬가지로 생산 연료가 우라늄, 석탄, 가스로 다양합니다. 이를 ‘전원믹스’라 하며 정부는 전기공급 안정성을 위해 한 연료원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l 전력시장 가격 결정 구조 (출처: www.kpx.or.kr)


전력시장 입찰에선 가장 저렴한 연료인 우라늄을 사용하는 원전이 가장 먼저 낙찰을 받습니다. 그 뒤는 원전 다음으로 저렴한 석탄 화력이, 마지막으로 천연가스(LNG) 발전소가 시장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값싼 전력부터 차곡차곡 용량을 쌓아 다음날 전력수급을 준비합니다. 내일 전력소비가 8,000만kWh가 예상된다면 약 9,000만kWh 정도의 발전소를 낙찰시켜 수급의 여유를 확보합니다. 이를 전력예비율이라고 합니다.


이때 가장 마지막에 시장에 들어온 발전소가 입찰한 가격이 도매시장의 전력가격이 됩니다. 저렴한 발전소부터 차례대로 들어왔으니, 수급대처가 가능한 선에서 가장 비싼 발전기가 가격을 결정하는 셈입니다. 이를 도매시장에선 계통한계가격(SMP)이라고 부릅니다.


이 경우 원전과 석탄은 가스발전보다 많은 차액을 남기게 되는데, 이 때문에 한국전력은 원전과 석탄에 대해서는 일정 계수를 적용해 차후 정산을 다시 합니다. 원가가 낮은 발전소의 차액을 그대로 인정할 경우 발전사업자들이 수익성을 위해 원전과 석탄발전만 선호하는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전기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의 괴리


지금까지 우리나라 전력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에서의 가격책정 방법을 알아봤습니다. 여기서 ‘도매시장 가격은 매일 바뀌는데, 왜 소매시장 가격은 잘 바뀌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위에서 언급한 전기요금과 소비자물가의 상관관계가 큰 이유입니다. 하지만, 도매시장의 가격변화가 소매시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금의 구조는 여러 부작용을 가져옵니다.


불과 4년 전 한국전력이 대규모 적자에 시달렸던 것도 도매시장 가격은 폭등하는데, 이를 소매가격에 반영하지 못했던 이유가 큽니다.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이 격리되어 있다 보니 정부 입장에서도 전기요금을 쉽게 바꾸지 못합니다. 지금 당장은 전력수급에 여유가 있지만, 전기요금을 내릴 경우 이를 다시 올릴 수 있다는 보장이 현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난해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에서 정부가 누진제 완화를 쉽게 결론 내지 못했던 이유이자, 우리나라 전력시장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올해 정부는 국제컨설팅 등을 통해 전력구입비 연동제를 검토한다는 계획입니다. 수요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전력시장을 위한 첫 작업입니다.



하지만 그 시도가 사회적 합의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지금이야 발전소도 많고 도매가격이 저가행진을 하고 있지만, 전력 업계에서는 향후 도매가격의 상승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늘어나는 전기수요와 산업 전반에서 발생하는 전기화, 기후변화대응, 원전과 석탄 반대 여론 등 그 이유입니다.

최근 정부가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육성하고 소규모 발전사업자들의 참여를 늘리며 에너지신산업을 키우는 것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인 셈입니다. 에너지신산업은 미래 에너지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사람들의 전력시장 참여를 높여 그동안 발전소에서 한전, 소비자로만 이어지던 일방향식 전력거래를 쌍방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글 | 조정형 기자  | 전자신문 산업경제부 에너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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