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메이커 페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 ⑤ “디자인, 제 손에서 시작하고 끝나요”

메이커 운동은 외국에서 시작한 문화 운동이지만, 국내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친 땅을 갈고 다듬어서 국내 메이커 문화가 지금의 성장기를 맞기까지 바탕을 일군 이들이지요. 본 시리즈 기사에서는 메이커 문화의 시작을 알린 메이크 브랜드의 국내 도입부터 여러 과정을 짚어가며, 그 시간 속에서 땀 흘렸던 ‘사람들’을 조명합니다. 작은 씨앗이 잘 자랄까 노심초사하며 물을 대고 거름을 주었던 무명의 농부들. 고마운 마음들을 잊지 않고 소개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메이커 운동에 참여하길 기대해봅니다.

강은영 디자이너는 메이크 코리아가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한 인물이다. 메이키는 매해 그의 손을 거쳐 새 옷을 입는다. 때로는 블랙에 레드로 시크하게, 때로는 알록달록 꼬까옷으로 멋을 낸다. 메이크 코리아 브랜드는 여러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만들어져 왔지만, 메이크 코리아 디자이너라고 할 사람은 강은영 디자이너가 전부다. 메이커 페어 서울뿐만 아니라 책과 굿즈에도 싱그러운 색깔을 불어넣고 있는 강은영 디자이너를 만나보자.

메이커 페어 서울 행사장의 룩앤필(Look & Feel)을 담당하는 강은영 디자이너를 만났다.

| 메이커 페어 서울 행사장의 룩앤필(Look & Feel)을 담당하는 강은영 디자이너를 만났다.

언제부터 메이크 브랜드 디자인 일을 하게 되었나요?

전 직장에서 메이크 라이선스를 가져와 계약하던 당시부터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메인으로 맡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일을 도와주다 보니 3회인가 4회 페어쯤 전담으로 맡아서 하게 됐죠. 그 인연이 이어져 메이크 라이선스가 블로터로 넘어온 뒤로도 함께하게 됐어요. 정희 기획자와 업무 스타일이 잘 맞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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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메이크 코리아와 함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희 기획자가 항상 지키고 싶어하는 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에요. 아이덴티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새롭게 꾸며야 하고 메이크 라이선스 지침도 따라야 해서 작업은 꽤 까다로운데요. 이제는 같이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기획자가 테마 안을 내면 제가 디자인 초안 몇 가지를 제안하고, 같이 이게 브랜드 기준에 맞는지 확인하면서 최종본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요. 주요한 몇 가지 기준을 잡아놓고 항상 그에 맞게 작업하다 보니 서로 이해시키는 과정을 줄이면서 빠르게 일할 수 있어요. 제가 계속 맡고 있는 것은, 이런 이해를 새로운 디자이너에게 구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제가 원래 메이킹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요. 사실 같이 일하다보면 동료 중에 누가 이런 분야에 흥미 있어 하는지 알게 되잖아요.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과 더 같이 일하고 싶어 하고요. 그래야 해당 일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니까요. 그래서 ‘재밌겠는데? 같이 해볼까?’ 하며 이것저것 함께 도모하다가 지금껏 같이 일하고 있어요.

메이커 페어 서울 2018 포스터, 올해의 행사 콘셉이 잘 담겨져 있다.

| 메이커 페어 서울 2018 포스터, 올해의 행사 콘셉트가 잘 담겨져 있다.

메이크 코리아 그리고 메이커 페어 서울와 관련된 디자인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하나요?

다 해요. 정말 다 해요. 메이크와 메이크 코리아를 상징하는 기존 브랜드 아이콘이 있고 거기에 따른 서체도 정해져 있지만, 자간이나 행간 같은 요소는 제가 다 만져야 하고요. 메이크 로고가 변경되면 메이크 코리아도 그에 맞춰 변경해줘야 하므로 지속해서 업데이트도 하죠.

제 본업은 북디자이너여서 메이커 미디어에서 만든 책의 번역서를 디자인하면서 관련 일을 조금씩 시작했는데요. 이제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메이커 페어 서울의 행사 메인 이미지, 파생된 배너, 현수막, 홍보물 그리고 굿즈까지, 메이크 코리아에서 진행하는 일에 필요한 디자인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전부 디자인하죠. 행사 디자인이 계속 똑같은 패턴이면 지루하니까 매년 조금씩 색상이나 디테일을 변경하면서 신경쓰고 있어요.

본업인 책 디자인과 메이커 페어 서울 행사 디자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스케일이 다르죠. 책은 시야에 들어오는 작은 공간 안에다 조감도를 그리듯 구성해서 보여주면 돼요. 앞서 말했듯 그게 메인 잡이다 보니 그 일은 어색하지 않은데요. 반면 행사 디자인은 훨씬 더 넓고 크게 생각해야 해요. 메이커 페어 서울은 제 머릿속에 입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를 때까지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어느 날은 제가 짠 초안이 구성면에서 글자도 너무 많고 빽빽하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있는데요. 실제 장소에 가서 비교해봤더니 너무 휑한 거예요. 제가 생각한 볼륨이 전혀 아니었죠. 다뤄야 할 스케일이 다르니까 규모에 따른 확장성을 고려해야 하는 게 제일 큰 차이점이에요.

2016년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한쪽 벽에 걸린 초대형 현수막(사진: 강은영)

| 2016년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한쪽 벽에 걸린 초대형 현수막(사진=강은영)

블로터앤미디어가 출간한 첫번째 메이크 번역서. 강은영 디자이너의 손을 거쳤다.(사진: 강은영)

| 블로터앤미디어가 출간한 첫번째 메이크 번역서. 강은영 디자이너의 손을 거쳤다.(사진=강은영)

강은영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메이커 작업노트와 메이키 볼펜(사진: 강은영)

| 강은영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메이커 작업노트와 메이키 볼펜(사진=강은영)

메이커 페어 서울을 디자인하며 특히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있다면요?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한다? (웃음) 행사 때 관람객이 받는 팜플렛에 들어갈 지도 그리기에 시간이 진짜 오래 걸려요. 지도의 그래픽이 실제 동선으로 시야에 맞게 타고 들어가야 하거든요. 제가 처음 메이커 페어 서울을 본격적으로 맡아 하면서 가장 먼저 열정을 불태운 부분이 지도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장소가 바뀌는 것에 두려움이 있기도 해요. 장소를 옮길 때마다 새로 그려야 하니까요. (웃음)

메이커 페어 서울 2018 현장에서 관람객들의 길잡이가 되어준 팜플렛지도 위에 전시 구역과 메이커들의 위치가 표시되어있다.

| 메이커 페어 서울 2018 현장에서 관람객들의 길잡이가 되어준 팜플렛지도 위에 전시 구역과 메이커들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중요도로 따지자면, 지도보다는 그해 콘셉트가 뭔지 정하는 일이 더 중요해요. 매해 조금씩은 달라야 하잖아요. 요리사로 치면 재료는 같은데 어느 날은 그걸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어느 날은 강된장이나 된장국 등을 만들어서 매번 변주를 해야 하는 거예요. 메이커들이 워낙 개성도 뚜렷해서 제각기 다른 작품들을 보여주니까 오히려 한 가지의 일관된 테마를 잡기가 어렵기도 하죠.

해마다 바꾸는 행사 메인 이미지.(위) 지난해 열린 메이커 페어 서울 2017, (아래) 메이커 페어 서울 2018

| 해마다 바꾸는 행사 메인 이미지. 지난해 열린 메이커 페어 서울 2017(위), 메이커 페어 서울 2018(아래)

디자인 콘셉트는 매번 어떻게 변화를 주곤 하나요?

지난해에 디자인한 후드의 경우에는 라인을 강조했어요. 메이커가 작업할 때 꼭 거치는 과정이 설계잖아요. 그런 느낌을 연결하려고 메이키 주위를 둥글고 네모난 라인이 감싸는 식의 요소를 많이 넣었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빨강과 파랑만 강조하곤 했는데 올해는 컬러를 다양하게 담았어요. 너무 마니아만 오는 행사가 아닌 가족 행사, 아기자기한 맛도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담고 싶었거든요. 그렇다고 한꺼번에 갑자기 바뀌면 부담스러우니까 메인 이미지는 유지하되 조금씩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설계 과정의 느낌을 살려 제작된 후드티

| 설계 과정의 느낌을 살려 제작된 후드티

마스코트인 메이키 로봇도 올해 처음으로 입체 이미지를 만들어서 썼어요. 기획자가 라이선스 이미지가 흔들리는 걸 꺼리는 부분이 많아서 다른 모양으로 나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긴 한데요. (웃음) 조금씩 변주를 주다가 작년부터 메이키를 동적으로 표현한다든가 입체로 보여주니까 조금은 과감해져서 이번 기회에 변화를 줘봤어요. 제가 직접 그렸는데, 입체로 그리면 눈은 어떻게 할지 각도는 어떻게 잡을지 등 신경 쓸 부분이 많더라고요.

메이키 핀버튼. 처음으로 입체 이미지가 사용됐다.

| 메이키 핀버튼. 처음으로 입체 이미지가 사용됐다.

메이크 브랜드를 디자인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언제인가요?

어떤 해에는 메이커 페어 디자인을 넘어서 스태프까지 한 적이 있어요. 그중에서도 메이커 쉐드를 담당했거든요. 왜냐하면 사용자의 반응이 궁금해서요. 쉐드는 굿즈를 팔고 설명하는 곳이니까 곧바로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쉐드 부스로 갔더니 그 자리에서 디자인이 예쁘다는 평을 많이 들어서 좋았어요. 한 일본인 메이커는 제가 만든 게 자기 나라 것보다 훨씬 제품이 좋다며 칭찬해주기도 했고요.

그리고 메이커 페어 서울을 무사히 마쳤을 때가 기분이 좋죠. 낯빛이 안 좋아질 정도로 다 같이 고생한 사람들끼리 끝나고 밥 먹을 때? 술 마실 때? (웃음) 그때 동지애를 느낄 수 있어요. 페어를 진행하면 몸이 정말 고생스럽거든요.

전시 시작 전,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인 쉐드 부스올해 쉐드 매출은 역대 메이커 페어 서울 중 가장 높았다.

| 전시 시작 전,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인 쉐드 부스. 올해 쉐드 매출은 역대 메이커 페어 서울 중 가장 높았다.

올해의 행사 디자인을 반영한 의류와 가방

| 올해의 행사 디자인을 반영한 의류와 가방

인기가 많았던 소품류 (사진: 장지원)

| 인기가 많았던 소품류 (사진=장지원)

메이크 브랜드 도서들. 역시 강은영 디자이너의 손을 거쳤다. (사진: 장지원)

| 메이크 브랜드 도서들. 역시 강은영 디자이너의 손을 거쳤다. (사진=장지원)

본인이 생각하기에 정말 마음에 잘 들게 뽑아낸 굿즈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무척 마음에 들어서 누가 뭐라 해도 하나는 만들어야겠다고 한 회색 후드가 있어요. 작년에 만들었죠. 뒤에는 제가 검은색 선으로 직접 그린 메이키가 있는 건데요. 꼭 메이커 티가 나지 않더라도 일상복으로 입고 나가도 괜찮도록 해봤죠. 제작분은 모두 소진됐어요. 우표 모양으로 디자인한 스티커도 예쁘게 나왔어요. 떨어질 때의 모양도 실제 우표 같이 떨어지게끔 재단한 디자인이 특징이었죠. 물론 모든 굿즈가 하나하나 기억에 남고 다 예쁘다고 스스로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건 자존감의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일단 나부터 좋아해야 다른 사람도 좋아할 테니까요.

2016년에 우표 모양으로 제작된 스티커

| 2016년에 우표 모양으로 제작된 스티커

저는 너무 마니아틱하게 로고만 크게 박기보다는 은근히 호감을 끌어 조금씩 알리기도 중요하다고 봐요. 우선은 넓은 범위의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니까요. 세상에 있는지조차 모르던 브랜드인데 딱 봤을 때 접근하기 어렵다고 느끼면 안 되잖아요. 그 간극을 줄이는 일도 디자이너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메이크 코리아와 일하는 디자이너로서 마음속에 꼭 염두하며 일하는 지점이 있나요?

저는 디자이너의 위치에서 제안하지 선택하지 않으려고 해요. 같이 만드는 것이지 제가 혼자서 하는 예술이 아니니까요. 클라이언트 잡이라면 딱딱하게 느껴질까요? 저는 필요한 곳에 필요한 디자인, 내용을 담는 디자인이 들어가면 좋겠어요. 내용은 별로인데 디자인만 예쁜 콘텐츠는 제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거든요. 브랜드에 어우러져서 제 기능을 하면 그게 베스트가 아닐까 해요. 올해 메이커 페어 서울에 컬러감을 더 넣었지만 내 마음대로 과감히 화려하게 가기보다 자연스레 묻어나게 수준를 조절한 것도 그 이유에서예요.

행사장 사이니지와 전시자, 스태프 명찰도 매년 다르게 꾸며진다. (사진: 강은영)

| 행사장 사이니지와 전시자, 스태프 명찰도 매년 다르게 꾸며진다. (사진=강은영)

메이커 페어 서울에 앞으로 달라지거나 추가되면 좋을 아이디어가 있을까요?

예전에 미국 메이커 페어에 가서 본 것 중에 어떤 카드가 있었어요. 관람객들이 메이커 정보가 담긴 카드를 보고 힌트를 따라 메이커를 찾아가는 게임 카드요. 우리도 그런 기획을 해보면 좋겠는데 아직은 규모가 미국처럼 크지가 않아요. 머지않아 더 확장되면 그런 게임을 메이커 페어 서울에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는 해마다 사전에 테마를 하나 내걸고 테마와 연관된 만들기 작업을 들고 올 수 있게 기획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하나의 주제에서 다양한 결과물이 나오면 서로 비교해보는 즐거움도 있을 테니까요.

글| 장지원

메이커 페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 시리즈

‘메이킹’이라는 것
메이크 코리아의 시작, 그리고 지금
메이커 페어 서울의 기획자 정희
전시장 메이커, KMK렌탈
⑤ “메이커 페어 서울을 디자인합니다”

· 기획 | 윤나리 메이크 코리아 콘텐츠 매니저
· 인터뷰 | 장지원 프리랜서 기자
· 감수 | 정희 메이커 페어 서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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