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13살 ‘키즈 메이커’ 강선우를 만나다

지난 메이커 페어에서 독특한 부스를 보곤 걸음을 멈췄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등장하는 ‘레이저 감옥’이 미니멀한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다. 부스 옆 흰 칠판에는 까만 글씨로 ‘키즈 메이커’라고 쓰여 있었다. 그 장본인들인지 두 명의 메이커가 관람객들을 열심히 불러 모으고 있었다.

“이게 뭐예요?”

“한 번 해보세요. 하시면 기념품 드려요.”

메이커 티셔츠를 입은 두 메이커의 눈이 반짝였다. 둘다 앳된 모습이었다. 레이저에 발이 닿지 않게 조심하라는 주의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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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에 발이 닿으면 어떻게 돼요?”

“아, 발이 잘려요.”

다행히 레이저 감옥을 무사 통과하고 기념품을 받았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물개 모양 펜던트였다.

무시무시한 레이저 감옥을 만든 키즈 메이커팀 강선우, 강연수 자매는 둘다 초등학생이다. 언니인 강선우 메이커는 4년 연속 메이커 페어에 참가하고 있다.

메이커는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만들기만 한다고 메이커라 부르지는 않는다. 자신이 만든 다양한 결과물을 타인과 공유하고 나누는 과정이 포함돼야 메이커 활동이라 부를 수 있다. 메이커의 전시회이자 축제인 메이커 페어에 참여하는 것도 메이커 활동의 일환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메이커 수는 2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강선우 메이커는 8살부터 메이커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강선우 메이커가 만든 작품은 셀 오토마타, 고카트 ‘컵케익카’, 태양열 에너지발전기, 지진가스 안전 알리미, 손수 조립해 만든 3D 프린터, 자동으로 스위치를 켜주는 손가락 등 다양하다. 2016년에는 아버지 강태욱 씨와 함께 ‘아빠와 함께 하는 키즈 메이커’라는 책도 펴냈다.

인터뷰할 당시 그의 나이는 12살이었지만 해가 바뀌어 이제는 13살이 됐다. 강선우 메이커의 본업은 초등학생인 셈이다. 취미는 ‘분해’와 ‘조립’이다. 이것저것 분해하다가 부모님의 아이폰을 분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조립하는 데는 실패했다. 강선우 메이커는 “엄청 혼났다. 아빠가 스마트폰을 새로 사야 했다”면서도 “혼날까봐 그 후에는 동생 휴대폰을 분해했다”라고 말했다. 언니의 영향을 받아 동생 강연수(10) 양도 공학에 눈을 뜨고 있다.

“동생 휴대폰을 분해하고 있는데 동생이 와서 ‘어, 나도 같이 분해할래. 내 폰 맞지?’해서 ‘응, 그래’라고 했어요. ‘근데 진짜 네 폰인데 괜찮아?’라고 다시 물었더니 ‘괜찮아. 다시 조립하면 되지’라고 했어요. 결국 조립은 또 못했지만.”

2016년에는 동생이 강선우 메이커의 조수 역할을 담당했고, 지난해 메이커 페어에는 자매가 함께 메이커로 참여했다.

강선우 메이커는 “메이커들 사이에서는 나이가 상관없다. 70살 백발 노인도 20살이 될 수 있는 곳이 메이커 페어다”라며 “내가 12살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과 나이 제한 없이 마음껏 친해질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로봇강아지로 시작된 메이커 활동

강선우 메이커가 공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로봇강아지’ 때문이었다. 강선우 메이커는 7살 무렵, 로봇 제조 기업의 행사에서 응모권이 당첨돼 로봇강아지를 받았다. 처음에는 로봇강아지가 단순한 인형인 줄 알았다. 우연히 버튼을 누르자 강아지가 움직였다. 머리를 쓰다듬으면 진짜 강아지처럼 ‘왈왈’ 짖었다. 신기한 로봇강아지가 로봇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로봇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처음부터 메이커에 열정을 불태웠던 것은 아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겨울에 아빠가 메이커 페어 공고문을 주면서 ‘한 번 해볼래?’ 물었는데, 재밌어 보여서 신청했다”라며 “신청한 후에는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메이커 페어를 준비하기 위해 관련 동영상을 직접 찾아보면서 점차 흥미가 붙게 됐다.

“너무 재밌는 게 많은 거예요. 조그만 LED부터 엄청나게 커다란 UFO까지 종류가 여러가지인 거예요. 아, 나도 이런 걸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그때부터 메이커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메이커 활동만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강선우 메이커 역시 다른 초등학생들처럼 학교에 가고 학원을 다닌다. 영어단어를 외우고 학교와 학원 숙제를 다 마치면 어느덧 밤이다. 무언가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나는 건 주말 정도다. 초등학생 신분에 재료 구입에 드는 비용이 자유로울 리도 없다.

“재료 살 돈 없으면 아빠한테 돈을 빌려요. 다음 달까지 이자를 3% 붙여서 갚겠다고 하고 아빠가 허락하면 제가 사고 그렇게.”

“잘 갚아왔어요?”

“이자는 안 붙였지만 잘 갚아왔어요.”

‘칭찬스티커’를 모아서 2-3만원어치 물건과 바꾸기도 한다. 강선우 메이커는 “지난번에 칭찬 스티커를 다 모아서 3D 프린터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사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책상머리’ 공부 말고 체험으로 직접 익혀

13살인 강선우 메이커가 홀로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만드는 건 물론 어려운 일이다. 든든한 조력자인 아버지 강태욱 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학박사인 강태욱 씨는 현재 건설기술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강선우 메이커는 “모르는 게 있을 때 아빠에게 물으면 이렇게 하면 된다고 답변해준다”라고 말했다.

아버지 강태욱 씨가 전체를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강선우 메이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해당 지식을 그때그때 익힐 수 있게 도와준다. 예를 들어 강선우 메이커가 아이디어를 내면,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강태욱 씨가 알려준다. 유튜브나 DIY 관련 사이트인 인스트럭터블 등에 올라온 영상을 보여주면서 직접 해보게끔 장려하는 것이다. 실제로 강선우 메이커는 3D 프린터를 재료만 산 뒤 유튜브를 보고 만들었다. 만드는 데만 2개월 정도가 소요됐다.

때마침 학교에서 코드닷오아르지를 가르치는 방과 후 수업이 개설됐고, 6개월에서 1년 정도 코딩을 익히면서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게 됐다. 강선우 메이커가 다룰 수 있는 언어는 C언어, 파이썬 등이다.

“직접 해보라고 하는 거죠”

강태욱 씨는 ‘책으로 보기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식을 쌓고 참고하는 데에 도움은 되지만 이론보다 직접 부딪혀보고 안 되면 생각하고 찾아보는 방식으로 체득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직접 해보라고 하는 거죠. 드릴로 해보기도 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손톱이 찢어질 수도 있어요.”

강태욱 씨의 말처럼 메이커 활동을 하다 보면 공구를 다루는 법이 미숙해 다칠 수도 있고 긴장을 잠시 놓았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강선우 메이커는 메이킹 활동을 하다 두 달 동안 깁스를 하기도, 드라이버를 사용하다 손톱에 금이 가기도 했다. 강선우 메이커는 “나사를 잘못 박아서 풀려고, 빼긴 뺐는데 손톱이 이렇게 됐다”면서 손톱을 보여줬다. 동생 강연수 양도 납땜을 하다 실수로 인두 부분을 손으로 잡아 화상을 입어 고생했다.

강태욱 씨는 “(인두질을) 부모가 아예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대신 해주는 경우도 있더라.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이가 시행착오할 수 있는 과정을 부모가 빼앗는 거다”라고 지적했다.

상상력 무궁무진해도 정작 ‘만들 곳’이 없다

“무한상상실에서 레이저 커팅하고 남은 판들을 가져와서 사촌동생들과 비밀기지를 만들자고 했어요. 걔들도 만들기 잘하거든요. 나무 자르고 납땜질하는데 공원 관리하는 아저씨가 여기서 하면 안 된다고 쫓아냈어요.”

강선우 메이커처럼 메이커 활동을 하고 싶은 청소년들은 메이커 활동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될 것이다. 우선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만한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아쉬운 것은 국내에서 ‘메이커’라는 단어가 낯선 만큼 메이커 활동 공간인 ‘메이커 스페이스’가 부족한 상태라는 점이다.

2017년 9월 기준 전국 메이커 스페이스는 126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무한 상상실, K-ICT랩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지만 수가 적고 그중 50개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공간을 운영하는 전문인력 및 인력양성 프로그램은 미비하고 장비와 공간 역시 일회성 체험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정작 메이커 활동에 필요한 장비가 구비돼 있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다.

특히 강선우 메이커처럼 어린이가 출입하기에는 ‘어색한’ 공간이 많다. 일부 메이커 스페이스는 어린이의 출입을 막기도 한다.

지난해 말 정부는 누구나 쉽게 메이커 활동 공간에 접근할 수 있도록 2022년까지 전국에 메이커 스페이스 일반 랩 350개, 전문 랩 17개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 올해 메이커 운동 확산을 위해 382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강태욱 씨는 “교육이나 입시 제도가 아이들에게 제약을 주는데 메이커 운동으로 토양이 바뀌면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가는 게 의미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응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메이커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강선우 메이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전한다.

“처음에 잘 된 건 기억에 남지 않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겨우겨우 만든 작품은 나중에 볼 때도 뿌듯하고 기억에 남아요. 포기를 하려다가도 ‘아, 이게 기억에 남겠지’하고 시도를 계속하죠.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하겠지’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 돼요. 집을 만들고 싶으면 집을 ‘미니’로 작게 만들어보면 되고. 뭐든지 잘 될 거니까, 메이커 되고 싶은 분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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