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메이커의 아버지’ 데일 도허티, “두려워 말고 만들라”

중학교 1학년, 옆자리 짝꿍 덕에 처음으로 만화책을 알게 됐다. 만화책은 유치원 때 접한 동화책과는 달랐다. 책 속 주인공이 눈앞에서 숨 쉬었다. 글이 살아 움직였다. 그림을 따라 그리고, 나만의 캐릭터도 만들고, 친구들과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화책을 읽고, 따라 했다. 무섭게 빠져들었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상상한다. 만약 그때 내가 계속 만화를 그렸다면, 지금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만화책 읽는 걸 부모님께 들킨 날, 난 무릎 꿇고 손을 들었다. 만화책 말고 책 읽으라고,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실컷 들었다. 다시는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림 그리는 재주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솜씨도 없다며 자신을 숨기기 급급했다. 뭔가 만드는 일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여겼다.

“만들기를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겼으면 합니다. 만들면서 무언가 배우고, 습득하는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니까요.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만들기 시작했으면 합니다. 뭐든지 시작하면 됩니다.”

| 메이커 운동 창시자 데일 도허티.

데일 도허티 생각은 달랐다. 그는 미국 최대 IT 출판사 오라일리 공동 창업자이자 DIY 잡지 <메이크>(Make:) 창립자다. 무언가 끊임없이 만들고 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메이커 운동’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는 만들기를, 메이킹을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언제나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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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그리고 ‘과정’, 메이커 문화의 핵심

첫인상은 평범했다. 길에서 마주했으면,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 할아버지인가보다 하고 지나쳤을 정도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늘의 DIY가 내일의 USA가 될 것”이라며 주목한 메이커 운동을 창시한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데일 도허티의 학창 시절도 평범했다. 사건 사고 없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고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교에선 영문학을 배웠다. 졸업도 했다. 잘 나가는 실리콘업계 대표들이 갖춰야 할 ‘자퇴’, ‘중퇴’, ‘퇴학’ 등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메이커 운동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순간이나 계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학교에서 배우고, 친구들과 소통하고, 시험도 보면서 남들과 비슷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저는 소통하는 걸 좋아합니다. 글쓰기도 좋아합니다. 학교는 제가 배우는 걸 좋아한다는 걸 가르쳐줬습니다. 남들처럼 똑같이 학교에 다니면서, 저는 ‘어떻게 배우는가’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저만큼 배우는 걸 좋아하고, 즐기고, 자신이 배운 지식을 남과 나누고 소통하길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요. 그런 사람을 위해 메이커 운동을, 메이커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걸 더 많은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데일 도허티는 메이킹을 하기 위해서, 메이커가 되기 위해서 ‘특별함’, ‘재능’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메이킹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메이킹을 하는 시기가 정해진 것도, 메이킹을 할 분야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만들고, 만든 결과물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과 ‘과정’ 자체가 메이커 문화의 핵심이다.

“저는 피클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최근에 다녀온 메이커 페어에선 치즈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정원 가꾸기도 좋아합니다. 메이킹 분야는 무궁무진합니다. 필요한 것을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최신 IT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아니어도 됩니다. 쿠키를 만들어도 메이킹입니다. 메이커 운동도 제가 하는 메이킹 중 하나입니다. 이걸 잘 키워와서 기쁩니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서 연습하고,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실력을 쌓는 것. 메이커 운동도 이런 과정입니다.”

메이커 문화는 AI의 일자리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을까

데일 도허티의 눈으로 보았을 때, 요즘 아이들은 바쁘다. 대학 입학을 위해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다. 외우고, 또 외우고,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면서 조그마한 머릿속을 온갖 지식으로 가득 채운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르기에, 그 이상의 지식을 배우고 익히려고 애쓴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해야만 하기 때문에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는 이럴때 일수록, 미래를 위해 교육 현장에서 ‘메이커 문화’가 퍼지길 바란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왜 많은 사람이 대학 입학시험을 보겠다고 자신의 재능을 말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사업을 하거나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교육 환경도 상당히 터프하다고 들었습니다. 메이커 운동을 하는 관점에서 볼 때, 학교는 우리가 가진 아이디어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학교에 와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기술을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공부하는 데 정신이 팔려, 정작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데 소홀해지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기술이 보편화되면, 지식의 양보다는 지식을 활용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머릿속에 담긴 걸 꺼내 활용하고, 응용하고, 적용하는 과정이 더 필요해진다.

“미래를 생각해 볼 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고도 기술을 가진 사람, 또는 그런 기술을 공부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공지능이 미래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하지만, 무언가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일자리 정도는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제가 교육 현장에서 메이커 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과 재미,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탄생할 가능성 자체가 메이커 운동, 문화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가 끝났다. 데일 도허티는 평범하지 않았다. 눈에 열정이 가득한 뜨거운 사람이었다. 어디서나 새로운 걸 배우고 익히겠다는 자세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원하면 배울 수 있고,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대화에서 묻어났다.

그 기운을 인터뷰 동안 조금 이어받았나보다. 퇴근하면서 무지 노트를 하나 샀다. 연필은 집에 많으니까. 봉인 해제하는 심정으로 뭐라도 그려볼까 한다. 발로 그린 그림이면 어떤가. 데일 도허티가 그랬다. 일단 해보는 것. 그리고 하는 그 과정,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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