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미 연방법원 “애플, FBI 협조 의무 없다”

미국에서 미연방수사국(FBI)과 갈등 중인 애플에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되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FBI가 마약 거래상의 아이폰을 수사할 수 있도록 애플에 협조를 요청한 바 있는데, 법원은 애플이 FBI의 협조 요청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결정한 것이다. 미국 현지시각으로 2월29일 뉴욕 브루클린 연방지방법원의 행정판사로부터 나온 판결이다. 현재 샌버나디노 총시난사 사건 테러용의자의 ‘아이폰5c’ 보안을 둘러싸고 FBI와 갈등 중인 애플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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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의 배경은 이렇다. 뉴욕에서 수사를 벌이던 마약단속국(DEA)과 FBI는 마약 거래상 준팡을 검거한다. 준팡은 이미 지난 2015년 10월 법원에서 혐의를 인정한 바 있다. 준팡이 쓰던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5’도 중요한 증거물이 됐다. 하지만 DEA와 FBI는 아이폰의 보안 기능 때문에 더이상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DEA와 FBI는 애플에 아이폰의 잠금화면을 우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기에 이른다.

당시 DEA와 FBI는 협조 요청의 근거로 미국의 오래된 법인 ‘모든영장법(All Writs Act)’을 들고 나왔다. 모든영장법은 1789년 미국의 ‘재판법’에 포함된 법령이다. 연방법원이 협조를 요구하거나 명령을 내릴 때 혹은 법의 원칙을 준수하는 모든 종류의 법원 영장을 발부하는 경우를 규정한 법률이다. 법률 구조가 빈약했던 미국 건국 초기에 재판의 관할이나 영장과 관련한 근거 법률이 모호할 때를 대비해 만든 법이다. 법원은 사건에 딱 맞는 관련 법령이 없는 경우에도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할 경우 모든영장법에 따라 영장을 발부할 권한을 갖는다.

예를 들어 미국 법에는 IT 업체가 수사당국을 도와 테러리스트의 아이폰 보안을 풀어줘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모든영장법을 따르면, 법원은 IT 업체에 보안 우회를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샌버나디노 테러리스트의 아이폰5c 사건에서도 법원은 모든영장법에 따라 애플에 수사 협조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이번 판결과 샌버나디노 사건의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법원이 모든영장법의 효용성에 관해 의문점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모든영장법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이들을 압박하는 등 너무 광범위하게 해석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번 사건을 판결한 제임스 오렌스타인 행정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모든영장법이 오늘날 무엇을 허용하든, 혹은 1789년 의회가 무엇을 의도했든 정부 입장의 의미가 너무 광범위해 터무니없는 일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법원에서는 모든영장법을 기업에 사용자의 통화 내역이나 개인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근거 법령으로 종종 사용해 왔다. 이번 판결은 애플과 FBI의 갈등뿐만 아니라 디지털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 문제에 수사당국이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던 모든영장법의 가치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또, 제임스 오렌스타인 판사는 애플이 이번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을 들어 DEA와 FBI의 협조 요청을 기각했다. 판결문에서 판사는 “애플에 부과된 요청에 대한 부담을 고려할 때, 애플이 고객에게 약속한 데이터 보안과 프라이버시를 어느 범위까지 확장할지 고려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라며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그들이 열망하는 종류의 업체가 되기 위한 그들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애플과 FBI는 현재 샌버나디노 테러 용의자의 아이폰5c를 두고 마찰을 빚고 있다. FBI는 아이폰5c의 잠금화면을 우회하지 못했고, 법원은 애플에 보안을 풀어 FBI에 협조할 것을 주문한 상태다. 애플은 이를 ‘백도어’로 규정하고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위협하는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견해로 주문을 거부하고 있다. 뉴욕 법원에서 나온 이번 판결이 아이폰5c 백도어 주문 판결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애플은 FBI의 요청을 거부한 이유에 관해 오는 3월22일 법원에서 변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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