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가보니] ‘그림’만 그린 국내 첫 VR 게임 대회

“그림은 되네요.”

자욱한 연기 사이로 총격전이 벌어졌다. 거대한 총기로 무장한 4인 1조의 팀이 4평 남짓한 공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괴생명체를 제압했다. 국내 최초로 열린 가상현실(VR) 게임 대회 풍경이다. 게임 공간 바깥에선 가상의 적 대신 큼직한 ENG 카메라를 든 현실의 기자들이 그림이 되는 대회 참가자들의 면면을 담아내기 바빴다. 포토라인 바깥에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VR 산업의 부흥을 그리는 한 폭 그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그 그림에는 감상자가 결여돼 있었다.

프레임 바깥의 엉성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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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22일 ‘2017 VR 게임 대전’이 서울 상암동 디지털파빌리온에서 열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 등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쓰리디팩토리의 ‘스페이스워리어’와 스코넥엔터테인먼트의 ‘모탈블리츠 워킹어트랙션’로 진행됐다. 예선전을 거쳐 올라온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4강전과 결승전이 열렸다. 대회 총상금은 2천만원이다. 게임별로 우승팀에게는 500만원, 스페이스워리어 결승전 최고 득점자에게는 BMW 미니가 주어졌다. VR 게임의 e스포츠화 가능성을 가늠하는 이벤트 성격의 대회치고는 제법 큰 규모로 열렸다.

카메라에 담기는 그림은 그럴싸했다. 하지만 카메라 바깥의 실제는 엉성했다. 이번 행사는 VR과 e스포츠가 결합한 국내 최초의 VR 게임 대회로 소개됐다. e스포츠는 다른 여느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선수와 관객이 두 축을 이룬다. 게임을 하는 기반 시설뿐만 아니라 중계를 위한 환경 구축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회를 관람할 수 있는 시설은 갖춰져 있지 않았다. 사무나 전시를 위한 협소한 공간에 VR 어트랙션을 급하게 욱여넣은 모양새였다.

무대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는 4강전까지 게임 데모화면만 나왔다.

선수들은 진지했지만, 이들이 진지한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게임 화면을 보여주는 중계 화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중에 빈총을 쏘는 예비군 훈련장이 눈앞에 재현돼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마련된 20석 규모의 대형 스크린에는 4강전까지 게임 데모 화면만 출력됐다. 하지만 관객들은 개의치 않았다. 관객은 많았지만 정작 대회를 관전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회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대회 중간에 꾸려진 신인 아이돌 그룹 MXM의 무대인사와 이벤트 매치를 보러 온 팬들이었다.

아이돌 그룹 ‘MXM’ 무대인사

‘MXM’의 게임 시연

VR산업 위한 큰 그림 필요

“많은 분들이 VR 게임을 즐기고 VR 산업을 확산하기 위해 대회를 마련했다.”

–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주봉현 팀장

행사에 참여한 게임 개발사 관계자들은 시작에 의미를 둔다고 말했다. VR 게임으로 대회를 열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얘기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VR 시장 전반이 아직 대중화 문턱에서 맴돌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주최 행사를 통해 외부에 노출이 될 경우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 VR 콘텐츠 자체가 가진 잠재력도 엿보였다. e스포츠가 정통 스포츠와 비교해 지적받는 부분 중 하나는 선수의 역동성이다. 키보드와 마우스 위에서 빠른 손놀림만 조명된다. 반면에 ‘스페이스워리어’와 ‘모탈블리츠’를 하는 선수들의 동작은 제법 역동적이었다. 선수의 실제 회피와 조준 동작을 게임화면과 겹쳐 보여줄 경우 더욱 몰입감 있는 중계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의 ‘모탈블리츠 워킹어트랙션’

쓰리디팩토리의 ‘스페이스워리어’

문제는 행사 기획이 급조됐다는 점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 개발사는 자체 VR 게임 대회를 준비하던 중 주최 측의 제안을 받아 함께 대회를 꾸리게 됐다고 했다. 원래 준비하던 대회는 관객 참여형이 아닌, 매장 이용객들을 위한 행사였다. 다른 개발사 역시 어트랙션 매장 오픈 준비 중에 VR 게임 대회에 대한 콘텐츠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 VR 게임 대회 행사에 정작 관객이 빠져있었던 이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밝힌 이번 대회의 개최 목적은 VR 산업의 가치와 비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공감 확산, VR 산업 활성화를 위한 선순환적 생태계 구축 및 VR 콘텐츠 대중화 기여 등이다. 하지만 생태계 구축 이전에 콘텐츠 홍보가 지나칠 경우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기술에 대한 과장된 기대는 결과물이 받쳐주지 않을 때 환멸로 변한다. VR은 이미 지난 몇 년간 높은 시장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기대와 환멸이 반복되며 대중화 직전의 문턱에서 맴돌았다. 보기 좋은 그림보다 프레임 바깥의 생태계를 탄탄히 구축하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

북적했던 4강전과 달리 대회 결승전은 한산하게 치러졌다. 아이돌 그룹의 행사가 끝나자 관객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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