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포스트 이건희]’박근혜·최순실’이 지운 삼성그룹의 ‘창업 기념’ 사업

두산그룹의 발상지가 동대문이듯 삼성그룹의 발상지는 대구다. 삼성은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1938년 대구 중구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초창기 밀가루와 청과 등 작물을 팔았다. 제분기와 제면기를 들여오면서 국수가락을 뽑았다. 이후 1954년 삼성그룹 최초의 제조업체인 제일모직이 대구 북구 칠성동에 설립됐다.

삼성의 핵심인 삼성전자는 경기도(용인, 화성, 평택)와 충청도(천안, 아산), 경북(구미) 등 전국에 걸쳐 있지만 발상지가 대구인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대구에는 삼성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는 공식적인 기념관은 없다.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공식적인 역사관은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S/I/M)’ 뿐이다. 이 역사관은 경기도 수원 삼성디지털시티 내 위치해있다. 삼성그룹의 성장 역사와 삼성전자의 발전 과정도 이 역사관에서 볼 수 있다.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 사진./사진=삼성전자 뉴스룸

이건희 삼성 회장이 25일 타계하면서 대구에 삼성 기념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재계와 대구 지역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삼성의 발상지가 대구인 만큼 그룹의 출범 과정과 성장사를 기념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대구 인교동(호암 이병철 고택)에서 출생해 유년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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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청과 시민들 또한 이런 점을 고려해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블로터는 이건희 회장이 타계한 직후 이건희 회장의 생가를 방문했다. 시민들은 이 회장을 추모하기 위해 생가를 방문했고, 일부 시민들은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호암 이병철 회장’이라고 적힌 푯말을 제외하면, 삼성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시민들은 실망감을 나타내며 발길을 옮겼다. 이날 생가를 방문한 한 시민은 “쪼맨하네(‘조그마하다’의 경상도 방언)”고 말한 뒤 자리를 옮겼다.

왼쪽 삼성상회가 있던 자리 지어진 삼성상회 구조물, 오른쪽 고 이건희 회장 생가. 두 곳은 삼성그룹의 출범을 기릴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블로터

올해 중구청은 이건희 생가와 삼성상회를 기념할 수 있게 ‘이건희 기념관’을 짓는 건 어떤지 삼성측에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중구청은 관광객에게 골목 곳곳을 소개하기 위해 ‘근대로(路)의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데, 이건희 생가의 규모가 작아 적잖은 애로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상회가 있던 자리에는 산업공구 제조회사인 크레텍책임이 들어서 있고, 공장 입구에 삼성상회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글로벌 기업 삼성의 출범과 이건희 회장의 생가를 기념하기에는 위상이 맞지 않다는 게 중구청의 설명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호암 이병철 고택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소개를 하려고 해도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 어려움이 많다”며 “삼성이 이런 의미있는 공간에 신경을 안 쓰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삼성은 이렇다 할 입장이 없다. 사실상 기념관 설립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인다. 호암 이병철 고택의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삼성물산 관계자는 “중구청은 재개발 지역이고, (삼성상회가 있던 자리는) 다른 기업의 소유지인데 기념관이 왜 필요하냐”며 “이미 대구 북구에 삼성상회를 복원한 만큼 기념관을 지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삼성이 그룹의 발상지이자 이건희 회장 생가가 있는 인교동에 무관심한 건 이유가 있다. 삼성은 과거 박근혜정부 역점사업인 창조경제 사업을 지원했고,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가 위치한 제일모직터에 삼성상회를 이전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파면 등을 거치면서 기념사업의 취지는 퇴색됐다는 설명이다. 재계를 잘 아는 이들은 대구 중구에 지자체와 함께 기념관을 여는 건 삼성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삼성은 2017년 대구시 북구 칠성동에 위치한 옛 제일모직터에 삼성 기념관을 지었다. 삼성상회 안에 있던 자재를 그대로 활용해 옛 건물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이 공사는 2015년 착공을 시작해 꼬박 2년이 걸린 공사였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에 위치한 삼성상회/촬영=김주리 기자

삼성은 신축 삼성상회를 그룹의 발자취를 소개할 기념관 ‘삼성존’으로 활용하고,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집무실과 영상관들을 채워넣었다. 하지만 삼성존은 3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대중에 공개된 적이 없다. 현재까지도 건물 입구에는 ‘내부수리중’과 ‘출입금지’라는 내용의 푯말이 붙어있다.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창문에는 종이로 덧댔다. 한번도 대중에 공개된 적이 없었던 만큼 ‘개점휴업’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복원된 삼성상회 입구. 출입금지 푯말이 붙어있다./사진=<블로터>

삼성상회가 문을 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의 영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존은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출범한 이듬해인 2015년 복원 공사가 결정됐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근혜정부의 핵심 사업으로 지역 인재의 창업과 중소기업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가 들어선 제일모직터(규모 9만3980㎡)의 소유주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다. 제일모직터는 1995년 제일모직 대구공장이 구미공장과 통합한 이후 19년 동안 빈터로 남았다. 삼성도 제일모직터 개발에 관심이 많았지만, 마땅한 방도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2013년 제일모직 본관과 기숙사는 원모습 그대로 살리고 개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런데 2014년 돌연 제일모직터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의 부지로 활용키로 하고, 삼성과 대구시는 MOU를 맺었다.

이듬해 삼성상회를 제일모직터에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이병철 회장 집무실은 제일모직 본관에 복원하기로 했는데 삼성상회로 바뀐 것이다. 제일모직터가 창조경제를 이끌 ‘랜드마크’가 된 셈이다.

삼성이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내 삼성 기념관을 열려던 계획은 ‘박근혜·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국정농단 사태는 2016년 10월 최순실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 피씨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같은해 11월 삼성전자 본사 압수수색이 진행됐고 이듬해 2월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5년 7월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했다./사진=삼성전자 뉴스룸

이 부회장은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가 개소된 이후 여러차례 센터를 방문하면서 센터 활동을 지원했다. 삼성전자도 경북지역 중소기업의 지원과 스마트팩토리 육성을 위해 수백억원을 투자했다. 삼성은 2017년 4월 삼성상회의 개소식을 열고, 삼성존을 개관하려고 했지만 무기한 연기했다. 삼성은 삼성상회 개관 연기를 내부 사정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총수의 구속과 국정농단 사태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삼성상회는 사실상 방치된 채 운영되고 있다.

삼성은 삼성상회가 언론 등 외부에 알려지는 걸 극히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상회 보안은 과거 삼성 계열사 에스원의 자회사였던 에스텍이 맡고 있다. 에스원은 취재진의 소속 등을 여러차례 물으며 취재에 예민한 반응을 나타냈다.

대구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개소식이 연기됐고, 박근혜 대통령 파면 후 정권이 바뀌면서 (개소식이) 어려워졌다”며 “삼성도 더 이상 삼성상회를 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국정농단의 유산’이라는 관측도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설립 계획에는 대기업의 참여가 빠져 있었다. 2014년 1월 열린 관계부처 회의에서 센터 설립안이 공식화됐다. 참여주체도 지역 기업인과 경제 단체 위주였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는 같은해 4월 처음 문을 열었다. 대기업의 참여가 공식화된 건 2014년 9월이었다.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전 상근부회장과 15대 그룹 임원들을 만났다. 이후 대기업의 참여가 확정됐고, 이재용 부회장은 2014년 9월1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참석했다. 삼성이 삼성상회 복원을 결정한 건 세달 뒤인 2015년 2월이다.

타임라인을 살펴보면 삼성상회를 철거한지 18년만에 제일모직터에 복원된 데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승철 전경련 전 부회장은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청와대의 강압으로 시작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구 제일모직터에 복원된 삼성상회 개발 일지./자료=언론 및 대구시 보도자료 등

이렇듯 삼성은 국정농단 사태의 피의자이지만 피해자이기도 하다. 삼성과 대구와의 관계는 대구 성서공단에 있던 삼성상용차가 1990년대 외환위기 영향으로 문을 닫으면서 소원해졌다. 이 공장은 대구에 남았던 삼성의 마지막 공장이다. 이후 삼성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대구지역의 중소기업과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랜드마크’로 삼기 위해 삼성상회를 복원했지만, 국정농단 사태로 빛이 바라게 됐다. 삼성은 삼성창조경제단지(창조경제혁신센터가 입주한 곳)의 이름을, ‘삼성크리에이티브캠퍼스’로 이름을 바꿨다. 이전 정부와의 연관성을 지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타계로 대구의 관심은 다시 삼성상회로 쏠리고 있다. 삼성이 삼성상회를 열지, ‘호암 이병철 고택’ 인근에 또 다른 기념관을 건설할지 관심이다. 대구 시민의 바람에도 삼성이 쉽게 화답할 수 있는 이유는 전임 정부와 잘못된 관계 설정으로 얻은 교훈이라는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국정 농단 사태로 큰 비용을 치뤘다”며 “선대 회장을 기리기 위한 사업이라면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삼성도 (기념할 공간을 만드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고, 지자체에 나서는 걸 원하지도 않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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