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전경련 재가입의 기로에 선 삼성이 안쓰럽다

[지디넷코리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016년 국회 청문회에서 “개인적으로 저는 앞으로 전경련 활동을 안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당시 그의 마음을 다 짐작할 수 없으나 ‘부끄러움’과 ‘억울함’이 뒤범벅된 복잡한 심사였을 게 분명하다. 그도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이 베일을 벗으면서 세상을 뒤흔들었고 마침내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까지 탄핵되고 말았으니 누구라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심리 분석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전경련 활동을 안 하겠다.”는 당시 그의 약속을 진심이라 생각하는 이가 많았을 듯하다. 그 지경이 되면 누구라도 그런 마음이 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이유와 배경이 무엇이건 간에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부끄러운 마음에서나 억울한 심정에서나 두 번 다시 쳐다보기도 싫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 심리상태 아니었겠나.

삼성의 전경련 재가입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한편으론 의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회장이 당시 느꼈을 굴욕감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웬만하면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을 것이다. 그와 관련된 말은 삼성에서 금기어가 될 법도 하다. 그런데 다시 전경련에 가입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하니 의아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 굴욕감을 그새 다 잊었단 말인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감위)는 16일 삼성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재가입에 대해 논의했으나 결론을 짓지 못하고 오는 18일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다. 그런데 이 논의는 어쩌면 삼성의 전경련 재가입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은 이미 재가입을 결정했고, 직접 이 회장의 발언을 뒤집기가 어색하니, 준감위를 통해 명분을 얻으려 한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거다.

매월 개최하는 준감위 정례 회의가 이번 달에는 22일로 잡혀있는데, 그날이 마침 전경련 임시총회일이라 삼성 요구로 준감위 회의가 앞당겨졌다는 거다. 전경련은 22일 임시총회를 열어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흡수·통합하고, 전경련 명칭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바꾸는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전경련 일정에 맞추려 준감위 회의가 당겨진 만큼 그 분석이 터무니없는 건 아닌 듯하다.

분석은 물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삼성이 전경련 재가입을 이미 결정한 게 아니라, 가부간에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 됐고, 그 결정을 삼성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준감위에 맡긴 게 팩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경우 이 회장이나 삼성이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니, 삼성과 독립적으로 삼성의 준법경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준감위가 사회적으로 결정해달라는 뜻일 수 있다.

이 논란이 의아하면서 안타깝다고 말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실이 어느 경우이든(삼성이 이미 결정을 했든, 결정권을 진짜 준감위에 넘겼든) 이 회장과 삼성으로서는 흔쾌하게 자발적으로 결정하기 싫어 보인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르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 최대 기업이 경제단체 가입 여부마저 뜻대로 하기 어렵다니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 있겠나.

준감위도 결정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찬희 준감위원장은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며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고 여러 다양한 배경의 위원들이 위원회를 구성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서 다시 회의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삼성이 과연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실하게 끊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준감위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진짜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 찬반 논란이 심해 더 신중하게 결정하려는 것인지, 결정에 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신중한 척 하는 것인지. 다만 이 위원장 발언의 어폐를 주목한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전경련이야 말로 ‘정경유착의 고리’였다. 정경유착의 고리가 곧 전경련이었다. 이를 이 위원장의 회의 전 발언에 직접 대입해보라.

“(전경련 재가입 여부 결정은) 삼성이 과연 정경유착의 고리(전경련)를 확실하게 끊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과거 전경련과 새 전경련이 다르다는 말을 하려는 포석인가. 전경련이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대통령 후보 시절에 캠프에서 중책을 맡은 이가 회장직무대행으로 일하는 거다. 이 회장은 ‘옷을 갈아입으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을 진리로 여겨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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