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어린놈’의 1인 시사 방송, 들어보실래요?”

“보기 싫으면 안 봐도 된다고? 사실 그 말이 맞아. 그런데 가장 서글픈 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프로듀스 101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야. 무한경쟁! 이긴 놈이 다 가져가는 구조! 결과만 좋으면 아무리 과정이 잔인해도 땡큐라는 발상 등 프로듀스 101은 우리 사회의 잔혹한 현실을 아주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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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범근뉴스 화면 갈무리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 영상은 프로듀스 101을 비판하는 수많은 뉴스 콘텐츠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넓게 퍼진 콘텐츠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1950개, 공유 461개, 재생 수 12만회를 기록했다. 소셜미디어에서 꽤 잘 팔리는 콘텐츠를 만든다는 매체에서도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수치다. 이 영상을 제작한 사람은 1인 미디어 <쥐픽쳐스>의 운영자 국범근 씨다. 그는 페이스북유튜브에서 <쥐픽쳐스>로 독자들을 주로 만난다.

이제 16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 국범근 씨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영상을 만들어왔다. ‘어린놈이 뭘 좀 알아’, ‘역사인물 랩 배틀’ 등의 영상을 제작했고, <청춘씨:발아>와 함께 영상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국범근 씨는 게임, 뷰티, 푸드포르노가 범람하는 1인 미디어 영역에서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콘텐츠로 주목받는 창작자다.

‘범근뉴스’의 계기가 궁금하다. 어떻게 만들게 됐나?

“위기의식이 있었다. 영상을 만드는 데 품이 너무 많이 들었다. 영상 하나를 연출하려면 연출, 기획, 구성 등의 요소가 필요하다. 영상 하나마다 기획도 매번 새로 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영상을 내는 주기도 불규칙했고, 기간도 길어졌다. 꾸준히 시리즈를 만들 수 있는 포맷, 모든 제작 공정을 혼자서 할 수 있는 포맷이 필요했다. 적어도 일주일에 영상 하나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민하다가 내가 잘할 수 있는 주제인 사회·시사 콘텐츠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여러가지 참고할 자료를 찾아봤다.”

국범근 씨는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프로그램의 장학생이었다. 뉴스랩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주위로부터 여러 조언을 받은 것도 ‘범근뉴스’의 탄생에 도움이 됐다. 포맷을 참고할 사례도 찾아보고, 뉴스랩 프로그램을 거치며 공부한 아이디어도 가미했다. 예컨대 페이스북에서 영상을 퍼뜨리기 위해 자막의 가독성을 최대한 올리고, 길이도 짧게 조정하는 식이다.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 18-24살 청소년을 목표 독자로 설정하고, 목표 독자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영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범근뉴스’의 포맷은 일정하다. 국범근 씨 대답이 명쾌하다. “하나로 통일된 포맷에 이슈와 가치를 넣으면 됩니다. 금방 나와요.”

‘범근뉴스’의 포맷은 어떻게 구상하나?

“혼자 조사하고, 조언도 받고 여기저기서 따온 소스를 하나로 뭉쳐서 만들었다. 뉴스랩 프로그램 참여할 때 강정수 박사님이 <le floid>를 참고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청춘씨:발아>팀도  도와줬다. 듀얼모니터에 정보를 띄우는 것도 사례를 참고했다. 간단한 키워드, 사진만 넣어도 설명하는 내용에 대한 시각적인 효과를 도와준다. 편집하는 처지에서는 귀찮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메시지 이해에 도움이 된다.

자막도 예전보다 신경쓴다. 예전에는 ‘자막이 영상과 어떻게 잘 조화될까?’, ‘어떻게 하면 예쁘게 넣을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는 동영상 시청이 목적인 사람은 없다. 그냥 보다가 영상이 재밌어 보이면 보는 거다. 무조건 크게. 소리가 없어도 보기 쉽도록 가독성을 우선해서 편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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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역사인물 랩배틀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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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놈’들이 사회 현안을 이야기하는 ‘어린놈이 뭘 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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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씨:발아>와 함께 국정교과서 논란을 패러디한 영상

‘범근뉴스’ 이전에는 주로 풍자물을 많이 제작했다. 풍자물에 비해 뉴스는 본인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영상의 구성보다는 본인의 목소리로 생각을 전달한다. 어떤 점이 다른가?

“좀 더 직접적으로 전달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어떤 주제를 다루든지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메시지 전달 차원에서 무척 효과적이다. 이전의 영상보다 더 전달력이 높다. 어떤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이슈에 대한 견해를 얹어서 소개하다보니 직접적인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하게된다. 영상에서 ‘내’가 좀 더 살아나는 것 같다. 채널의 정체성이 잡히는 느낌이다. 영상 피드백 차원에서도 좋다. 영상을 통해 내 견해를 드러내면 댓글에 다른 사람의 견해가 달리고, 댓글에서 활발하게 토론이 이뤄진다.”

빨리 만들 수 있는 콘텐츠지만, 전파력은 공을 들인 콘텐츠에 못지않다. 최근 국범근 씨가 제작한 ‘역사인물 랩 배틀’은 4달에 한 번 정도 만들 수 있는 콘텐츠로, 품이 많이 든다. 일주일에 하나 정도 만들 수 있는 ‘범근뉴스’ 한 회의 전파력이 이와 비슷하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다. 페이스북에서 ‘범근뉴스’ 콘텐츠의 도달 수는 평균적으로 40~50만회 정도 나온다. 동영상 조회수는 10만회 정도이며, 댓글도 많이 달린다. 이전에 했던 방식보다 효과적이다.

인터뷰 전문 보기(블로터 플러스)

‘어린놈’의 목소리

이렇게 만들어지는 ‘범근뉴스’의 주 소비층은 청소년이다. 어른들은 ‘어린놈’들이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주류 언론이 상정하는 독자도 대부분 중·장년층이라는 걸 감안하면 의외다. 적어도 ‘범근뉴스’에서만큼은 청소년이 주가 된다.

“악순환이다. 청소년이 관심 가지고 발언을 해도 발언권 자체가 적다. 말이 잘 안 먹힌다. 젊은 세대가 사회현안을 이야기하면 어른들은 ’어린놈이 뭘 아냐’고 구박하고 핀잔한다. 이렇게 발언권에서 차이가 있고, 발언권의 차이가 ‘말을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정치혐오로 귀결된다. 이게 무관심을 낳는다. 건강한 담론을 형성하는 일이 악순환을 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범근뉴스도 그 일환이다.”

‘범근뉴스’는 사회에 어떤 이바지를 하나?

‘이바지한다’까진 아닌 것 같다. 나름대로 평가하자면, ‘범근뉴스’를 통해 해당 이슈를 몰랐던 친구들은 학습할 수 있고, 원래 이슈를 알던 친구들은 영상에 댓글로 자기의 의견을 피력해서 공론장을 형성한다. ‘범근뉴스’라는 포맷이 알려지고 관심을 받으면 이런 움직임이 많아질 것 같다.

사회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거의 필연적으로 편협해진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고, 주장에 동의하고, 또 같은 주장 복제하고 확산한다. 이는 자신을 균형 잡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똑같다. 하물며 혼자 일하다 보면 생각이 더 편협해질 수 있다. 국범근 씨는 “항상 경계한다”라며 “영상 제작 기술보다는 생각의 밑천을 쌓아야 한다”라고 답했다.

“영향력이 커지고, 내 영상을 본 사람이 많아지면서 스스로 경계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영상일수록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고 느낀다. 항상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회과학부에 진학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도 생각을 바탕으로 영상을 만들 거라면, 영상을 만드는 스킬과 기술을 학습하기보다는 생각의 밑천이 있어야 한다. 오히려 편협하게 되는 것 자체는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어차피 뉴스라는 게 전달자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경계하는 건 기계적인 중립이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명확하게 내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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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와 저널리즘은?

1인 미디어, MCN의 생태계에서 주로 접할 수 있는 콘텐츠를 의외로 천편일률적이다. 게임이나 뷰티, 먹방 등 장르의 다양성이 떨어진다. 시사콘텐츠 자체가 드물 뿐 아니라, 10·20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시사콘텐츠는 더욱 드물다. ‘범근뉴스’의 가치가 도드라지는 이유다.

“1인 미디어 저널리즘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나는 한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많이 공부한 학자나 몇 년 이상 일한 기자도 아니다. 이번에 대학 들어간 16학번 새내기다. 법적으로 처음 성인이 된 ‘허접’이다. 지금은 이런 나도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1인 미디어는 어떤 누구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내가 만드는 콘텐츠를 통해 1인 미디어, MCN의 생태계를 다양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현재 MCN, 1인 미디어 생태계에는 매우 많은 창작자가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창작자들이 존재하진 않는 것 같다. 게임, 뷰티, 먹방이 대부분이다. 또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그 생태계 자체가 혼탁해지는 경우도 많다.

1인 미디어 생태계도 혼탁하다. 이 환경 내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끌어내는 작은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 앞으로도 열심히 만들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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