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ad 국내 출시, 이북리더 전용기 위태롭다

"전용 기기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한 가지 작업에 있어서 분명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승리하는 것 범용기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전용 기기에 돈을 쓰는 것을 좀 꺼리기 때문입니다. 이북은 지금 시점에서 큰 시장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2009년 9월 9일 스티브 잡스)


지난해 9월. 스티브 잡스는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David Pogue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킨들류의 이북 '전용 기기'에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죠. 하드웨어 비즈니스로만 수십년을 살아온 그의 말이기에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시장을 관찰하게 됐습니다.

최근 모 인사로부터 국내에서 판매된 이북리더 전용기 수량이 누적 2만대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파피루스니, 아이리버 스토리니, 누트니. 이 판매량을 모두 합쳐봐야 겨우 2만대를 넘어서는 수준이라 하니 다소 의아스럽더군요.

지난해 10월 17일 기사를 한번 볼까요?

"아이리버 스토리는 출시와 동시에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말 예약판매 이틀 만에 초기물량 2000대 매진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4400여대가 팔려나갔다."(아이리버 e북 '스토리' 직접 써보니…)

지난해 10월께 이미 아이리버 스토리 단일 모델만 판매량이 4400여대였는데요. 현재까지 2만대를 넘지 못했다는 건 믿기지는 않았습니다. 하여튼 그만큼 이북 전용기가 판매 부진에 빠졌다 정도로만 이해를 했습니다.

현재 상황으로만 보면 이러한 이북 전용기 판매 부진의 이면에는 iPad라는 태블릿 PC의 등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물론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인과성을 설명해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유추는 가능합니다.

먼저 아래 설문조사를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렌드모니터 윤덕환 부장이 작성한 '리서치 결과로 예상하는 한국에서의 iPad 경쟁구도' 보고서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iPad, 넷북, 전자책 단말기 3가지 제품 중에서 2가지 제품을 구입한다면 어떤 제품을 선택하는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79.1%가 'iPad+넷북'을 선택했습니다. iPad+전자책 단말기는 11%, 넷북+전자책 단말기는 9%에 불과했습니다.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iPad와 전자책 단말기가 시장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iPad가 전자책 단말기의 기능을 포함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두 제품을 보완적으로 구매할 의향이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11%는 iPad와 전자책 단말기를 상호 보완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9.9%는 iPad보다는 전용 디바이스인 이북리더를 선호하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전용기의 시장 규모가 이 정도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따끈따끈한 통계 한 가지를 더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Resolve Market Research의 최근 자료입니다. Mashable이 잘 정리를 해줬더군요.



설문 중에 'iPad를 가지고 나면 다음 디바이스 가운데 어떤 디바이스를 사지 않을 것이냐'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49% E-Reader라고 답변했습니다. 다음으로 포터블 게임기(38%), 넷북(32%), mp3 플레이어(29%) 순이었습니다.

최근 아마존과 반즈앤노블은 킨들과 누크의 가격을 인하하며 iPad에 공격적으로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조만간 조건부 무료 이북리더가 등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iPad 구매를 어렵게 만드는 '가격' 요소를 집중 공략함으로써 시장의 파이를 유지하는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언론사에게 이북리더 전용기 버전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ESPN으로 친숙한 미국 미디어 그룹 허스트는 지난해 전용 이북단말기 개발에 나서겠다고 선포하고 Skiff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실제 디바이스까지 시장에 내놨습니다. 야심찬 계획을 시작한 전용 이북리더 개발사업은 결국 해당 자회사의 매각으로 종료됐습니다. 머독에게 넘겼죠.

머독은 전용 디바이스의 가치 때문에 인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했습니다. 종이신문의 콘텐츠를 다양한 모바일 디바이스 버전으로 컨버팅하는 기술을 주목했다고 했습니다. 이북리더 전용기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는 얘기였습니다.

iPad 개발 소식이 들려오지 않던 지난해, 저는 이북리더를 종이신문 시장의 부활을 이끌 중요한 디바이스로 주목해왔습니다. iPad가 출시된 지금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바뀔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할까요.

베일에 감춰져있던 iPad의 출시로 이북리더 전용기와의 시장 충돌점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현재 이북리더 전용기 국내 제조업체는 상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하반기에 삼성을 비롯해 LG, 팬택 등이 멀티미디어 태블릿 디바이스를 잇달아 출시하겠다고 확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북리더 전용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죠.

iPad의 등장으로 이북리더 전용기의 입장이 난처해지고 있네요. 앞으로 어떤 포지션으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물론 제조사 입장에선 애가 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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