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 Knight Foundation 배워라

영미권 언론의 월드컵 보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저널리즘을 대하는 태도가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한국보다 앞서 신문의 위기, 언론 산업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지만, 그들의 혁신성과 모험성, 도전정신은 언론 산업을 위기에서 재빨리 구제하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영미권 유력 언론의 월드컵 보도 패턴을 보셨나요?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의 월드컵 보도를 직접 경험해 보셨나요? '데이터 저널리즘'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이 두 언론은 증명해냈습니다. 자사 DB가 부족하면 외부의 DB를 활용해 혁신적인 보도의 전형을 제시했습니다. 신문에서 떠난 독자들이 다시 이들 온라인 뉴스 사이트를 찾게 만들고 있습니다.

CNN은 또 어떤가요? 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포스퀘어 손을 맞잡았습니다. CNN은 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포스퀘어와 협업해 CNN을 친구로 등록하면 'South Africa Explorer'와 'Super Fan' 월드컵용 배지를 받을 수 있는 참신한 기획을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실험의 기반에는 테크놀로지가 존재합니다. 영미권 언론은 현재 탄탄한 기술력과 혁신성을 무기로 저널리즘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저널리즘의 새판짜기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을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달초 CMSummit에 참석한 AOL(미국 내 포털) CEO인 Tim Armstrong은 저널리즘의 기술공포증(technophobia)을 언론사들이 치유하길 바란다고 조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콘텐츠 공간은 인터넷의 진앙지"라며 "이 콘텐츠 공간은 차기 개발하고 개척할 거대한 영역"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널리즘은 테크놀로지가 개척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부분을 여전히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독자와 대화하는 기술의 황무지

한국의 언론 산업은 여전히 기술의 황무지입니다. 도전적인 실험은 좀체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고전적 비즈니스에 매몰돼 카니발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 앞에서 실험은 그저 사치가 되고 맙니다. 한국의 언론이 당면한 뿌리 깊은 현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널리즘을 위한 기술은 기술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독자와 더 친밀하게 대화하고 소통하도록 하고 언론이 생산하는 뉴스와 콘텐츠의 독자 점접을 확대시키는 기술이 지금 언론 산업에 수혈돼야 합니다. 독자와 괴리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그리고 기자들이 힘들게 생산한 콘텐츠를 더 많은 독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혁신적인 기술들이 적극적으로 도입돼야 합니다.

기술은 비용을 수반합니다. 언론사의 형편에 따라 수용 가능한 범위가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가속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보정하기 위한 책무는 바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한국 저널리즘이 처해 있는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서 토론회를 개최하고 저술 지원 업무에 매달릴 때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해답 없는 교수들의 공염불을 들을 만큼 한국의 언론산업이 여유가 있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언론 관련 학회에서 제시된 수 많은 논문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논문에서조차 원론적 해법밖에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실험이 필요한 때입니다. 실험을 위한 기술적 인프라를 언론 산업 전반에 제공해야 합니다. ETRI의 기술 가운데 뉴스 소비를 진작시키고 저널리즘의 퀄리티를 제고할 수 있는 요소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기금을 털어서라도 언론 조직에 공급해야 합니다.

Knight Foundation 본받아야

오늘 저는 2010 Knight news challenge 12개 수상작을 번역해 소개했습니다. 이 행사는 2007년부터 4회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로컬 뉴스' 진흥시킬 수 있는 플랫폼 아이디어에 연간 수백만 달러를 수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따지면 지역언론 진흥을 위해 아이디어에만 수십억원을 지원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의 현실을 되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내엔 지역신문발전기금이라는 게 존재합니다. 6년 기한으로 설립된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집행하는 기금입니다. 올해로 마지막을 맞고 있습니다.(추후 연장될 수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 기금을 지원받기 위한 자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지원대상 선정 당시 계속하여 1년 이상 정상적으로 발행하는 경우
▲ 광고 비중이 전체 지면의 2분의 1 이상을 넘지 아니하는 경우
▲ 사단법인 한국ABC협회에 가입한 경우
▲ 지배주주 및 발행인․편집인이 지역신문 운영 등과 관련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항에 대해 금고이상의 형을 받지 아니한 경우


신문이 아니면 지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로컬 저널리즘을 살찌우는 주체로서 신문 혹은 방송 아니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고전적 사고의 패러다임이 디지털 저널리즘 시대에 대한 대응을 더욱 더디게 만들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로컬 저널리즘의 혁신이 더딘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거론한 적이 있지만 신문, 방송과 같은 전통적인 저널리즘 플랫폼으로 한정한 저널리즘 지원 사업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즘은 더이상 전통 미디어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Knight news challenge는 디지털 저널리즘 시대에 로컬 뉴스를 풍성하게 육성할 수 있는 전 세계 모든 아이디어를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테크놀로지 진흥에 나서야 할 때

새로운 저널리즘의 여명기에 기자들에 대한 재교육 무척 중요합니다. 필수 요소입니다. 하지만 재교육을 받고 돌아간 기자들이 이를 실험할 수 있는 뉴스 플랫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저 혼자 고독하게 싸우다 이내 지쳐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웹 시대, 뉴스 소비에 기반한 비즈니스 이니셔티브를 포털에 넘겨진 쓰라린 기억은 여전히 언론사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트래픽의 노예로 전락한 온라인 뉴스 조직은 '저널리즘'이라는 언론사의 본령과 스탠더드를 내던져야만 생존할 수 있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빚어냈습니다. 그 이면에 혁신적인 테크놀로지에 대한 무관심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추진해야 할 1순위 사업에 '저널리즘을 살찌우기 위한 테크놀로지 지원'이 포함돼야 합니다. 또 재단은 언론의 정의를 다시 하고 지원 범위를 확장해 저널리즘의 재탄생을 위한 뉴스 벤처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벤처의 기술이 다시 언론사와 접목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부디 새로운 저널리즘 시대에 새로운 옷을 걸쳐입고 새로운 방식으로 언론 산업 진흥에 나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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