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데이터와 사랑에 빠졌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what can be said at all, can be said with clarity."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최근 데이터 저널리즘과 관련해 비트겐슈타인의 이 짧은 한 마디가 정종 인용되고 있습니다. 다소 확장된 의미이긴 하지만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라면 더 명확하고 쉽고 명료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뜬금없이 이 표현을 들먹인 건 다름이 아닙니다. 저널리즘의 새 조류인 데이터 저널리즘을 현황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지난 8월 12일입니다. 데이터 저널리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가디언이 주목할 만한 시도를 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의 정렬 툴을 이용한 영국 연립 정부의 ’공약 검증’ 서비스입니다.

얼마 전 영국 연립 정부가 100일을 맞았는데요. 가디언은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선거과정에서 내세운 433개 공약과 약속의 이행 현황을 보여주는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The Guardian coalition pledge tracker’라는 코너입니다.

이 서비스는 433개 공약을 '지켰다' '기다리는 중이다' '진행 중이다' '지키지 않았다' 등 7개 단계로 분류해 각 공약별로 이행 현황을 알려줍니다. 독자들은 공약의 제안 정당과 이행 난이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 진행 상황을 확인해볼 수도 있습니다. ‘pledge tracker’라는 데이터 분류 툴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선거 기간에 약속한 공약은 어느 시점이 되면 자연스럽게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굳이 공약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챙겨보는 유권자들도 드뭅니다. 워낙 자료가 방대하고 이행 여부를 점검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진척도를 가늠하는 작업 또한 일반인이 쉽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디언은 특유의 데이터 저널리즘 노하우를 활용하고 접목해 이러한 서비스를 내놓았습니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쉽고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가디언의 역량은 이미 정평이 나있습니다. 예전에도 가디언은 하원 의원들의 세비 지출내역을 담은 45만8832건의 문서를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하고 독자들의 리뷰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2만7000여명이 22만1538건의 문서에 대해 지적 사항을 남겼습니다.

가디언은 가장 지적 사항이 많은 페이지와 정당을 순위대로 공개했습니다. 리뷰에 가장 열성적이었던 독자도 함께 집계해 사이트 한켠에 게시했습니다. 기자 10명이 투입돼도 쉽지 않은 방대한 문서를 데이터에 접근하는 가디언만의 노하우와 독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알토란 같은 분석 결과를 도출해냈습니다.

이처럼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거나 혹은 현상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는 저널리즘 형태를 데이터 저널리즘이라고 부릅니다. 아시다시피 신문의 텍스트 기반 표현 방식으로는 오늘날 발생하는 수많은 정보의 양을 모두 처리할 수가 없다습니다. 때문에 데이터를 활용하는 다양한 표현 방식은 현대 커뮤니케이션에 중요한 요소가 돼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주장합니다.

이러한 흐름에 다수의 세계 유력지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의 월드컵 보도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데이터 저널리즘'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이 두 언론은 증명해냈습니다. 자사 DB가 부족하면 외부의 DB를 활용해 혁신적인 보도의 전형을 제시했습니다. 신문을 떠난 독자들이 이들 유력지의 온라인 뉴스 사이트를 다시 찾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언론사 내부에 저널리즘과 테크놀로지를 결합하려는 흐름과 맞닿아있습니다. 이미 뉴욕타임스 내에는 Technology Manager, Mutimedia Journalist라는 직책으로 엔지니어들이 다수 결합해있습니다. 편집국 내에 개발 직군이 근무하고 있는 형태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AP도 최근 ‘Interactive Newsroom Technology Manager’를 공개 채용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 직책의 역할에 대해 “위젯이나 데이터 저널리즘, 인터렉티브 기능, 손쉬운 템플릿, 모바일용 콘텐츠 등 데이터 기반 콘텐츠를 제작하는 팀을 관장한다”고 밝히고 있었습니다.

저널리즘에서 테크놀로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일부 세계 유력지의 언론사 편집국장은 저널리즘만큼이나 테클놀로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언론 상황은 아직 열악하기만 합니다. 데이터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 인력은 찾기 힘들고 엔지니어가 편집국에 근무하는 사례로 좀체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독자들은 여러 사회 현상과 팩트를 더 직관적으로 접하고 싶어 합니다. 학계에서 자주 거론되는 ‘읽는 뉴스에서 보는 뉴스로의 이행’이라는 표현이 이를 명확히 방증합니다. 웹이라는 공간이 가진 매력, 무한대의 구현 가능성에 국내 언론사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AOL(미국의 포털 사이트) CEO인 팀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합니다.

“콘텐츠 공간은 인터넷의 진앙지다. 이 콘텐츠 공간은 개발하고 개척할 거대한 영역이다. 저널리즘의 기술공포증(technophobia)을 언론사들이 치유하길 바란다.”

우리안의 기술공포증을 털어낼 때 국내 언론사에서도 데이터 저널리즘의 혁신적 성과물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더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기다리는 독자에 대한 언론사의 책무가 아닌가 합니다.

의견 0 신규등록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