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의 서막 : 피디수첩 결방 사태에 부쳐

1.
우선 상식적으로 지난 8월 17일 피디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결방 사태의 의미를 짚어보자. 한 줄, 아니 몇 단어면 족하다. MB 시대의 보도지침 사건. 전두환 시절에나 있을 법한 언론 통제가 국가권력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은 위장된 방식으로, 그러니까 우스꽝스런 허수아비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자행되었다.

MBC 사장 김재철은 대한민국 언론사상 가장 치욕적인 이름으로 남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는데, 법원마저 '방송해도 별 문제 없음'(국토해양부의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이라고 확인해준 자사 프로그램을 결방시킨 용맹무식함을 만천하에 과시했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상식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민망한 수준으로 폭주했다. 포르노로 치면 정말 쎈 하드코어다. 로코 시리즈의 가장 하드한 버전 같다(로코가 참 열심히 하긴 하지).

2.
붕괴의 서막. 둘 중 하나다. 시민사회라고 불리는 추상적이기 그지 없는 그 신기루 같은 이름이 이토록 완전하게 노골적으로 개무시 당하면서도 그렇게 내내 '힘없는 내가 병신이지' 하면서 탄식하는 망각의 무시무시한 시트콤을 무한 반복하거나, MB로 상징되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불도저 권력의 균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거나.

3.
나는 솔직히 전자에 좀더 가능성을 높게 두는 편인데,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시민사회라는 건 그냥 조금 의식(?) 있는 소시민들 혹은 소위 진보적인 지식인들 혹은 민주당 유사의 집단들이 시민들을 이용해 먹거나 혹은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한 허구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사분위의 교육쿠데타와 피디수첩 결방은 MB 시스템의 자연스런 논리 귀결이면서, 동시에 야당을 포함한 시민 사회의 존재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다.

4.
여기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왜곡된 의식의 구조화. 흔히 조중동에서 만들어내는 '진보 v. 보수'의 가짜 이항대립 안에서 몰상식과 상식의 싸움이 계속 진보 빨갱이들 v. 자본주의 수호라는 캐병신 같은 환각으로 위장된다. 그러니까 온건한 리버럴 혹은 그냥 적당히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식물 민주당'을 '진보' 혹은 좌파로 덧칠하고, 이건 도무지 보수의 '보'자도 붙이기 어려운 집단들이 '보수'로 위장한다. 그 와중에 그나마 진보 혹은 좌파로 이름붙일 만한 집단은 줄기차게 무관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웃오브안중이 되어가고...

이런 의식 왜곡의 광활한 토양 속에서 정치적인 상상력은 무슨 자본주의 잉여들의 엽기적인 놀이인 양 줄기차게 파편화되고, 소외되며, 우리시대 진보의 최전선이라고 나는 기대하고 있는 온라인 역시도 애플과 삼성 혹은 구글과 네이버의 이분법적 틀짓기 혹은 자기 기만적인 이율배반 속에서 여전히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누누히 강조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눈부신 지배력, 그리고 여기에 기생하는 그 온갖 쓰레기 찌라시 언론/"빠워"블로그들은 피디수첩을 집어삼키기에 충분할 만큼 싱싱한 '가십'을 쏘아올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아, 여기에는 피디수첩마저도 미끼로 사용하는 블로그도 포함이다. 내가 여기서 자유롭단 이야긴 전혀 아니다. ㅡ..ㅡ;

5.
그러니까 결론은 단순하다. 더나은씨상지대 친구들에게 '그 부치지 못한 영상편지'를 공개하는 그 날이 오기 위해선, 그리고 MB식 보도지침 같은 캐B신 같은 짓을 당하면서 살지 않으려면... 뚝배기가 되는 수 밖에.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개무시 당하면서 살아도 뭐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아니, 할 말이 있어도 그냥 입 다물자. 쪽 팔린다.

단순하다, 끝까지 기억하고, 심판하면 우리가, 시민이 비로소 주인이 된다.


5-1. 실은 MBC(노조)라면 단순히 악에 의해 핍박받는 순결한(?) 약자로 보기는 힘들고, 그 자신이 언론권력으로서 이중적 지위를 갖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는 피디수첩이 정의의 수호자라는 생각은 별로 안한다. 하지만 이 염병할 별천지에서 충분히 그렇게 '보이고' 그것마저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지금 상황이라면, 피디수첩과 MBC 노조는 기꺼이 우리들의 '다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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