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의 미래 : 위기의 블로그

0.
“예술과 관련된 그 무엇도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T.W.아도르노)는 [미학이론]의 한 문장을 빌어 글을 시작하면, 이제 블로그와 관련된 그 무엇도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 블로그는 위기에 빠졌다. 블로그는 여전히 새로운 미디어로서 웹의 중추적인 콘텐츠 생산과 소비를 담보할 형식으로 주목받고 있고, 기성언론으로부터도 자신의 담론권력을 확장할 수 있는 웹의 생산 및 유통 수단으로 채택되고 있기는 하지만(각 언론사닷컴의 하위 서비스로서의 블로그), 많은 이들이 블로그 자체의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기성언론과 블로그 간 관계도 대단히 피상적인 채로 머물고 있다. 블로그는 새로운 미디어로서가 아니라 그저 단순한 광고판으로 주목받을 뿐이며, 새로운 웹의 시대에 부합하는 창조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기성 목소리를 확장시키는 단순한 재생기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블로거들 역시 '블로그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선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잖아!"라는 일견 당연한 목소리들은 하지만 또 동시에 얼마나 기성 권위에 순응하는 목소리인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기성 시스템의 관성에 실존적인 고민과 창조적인 저항을 거세시킬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이제 블로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고민되어야 할 시점에 도달해 있다. 아니 이제야말로 블로그를 진지하게, 하지만 즐겁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블로그의 미래, 그리고 위기의 블로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1. 여전히 문제는 포털이다.
포털이라는 지배적인 웹 콘텐츠 유통권력은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포털은 블로그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지지하는 형식인가, 아니면 블로그의 가능성을 제한할 한계로서의 형식인가. 포털은 점점 더 후자의 가능성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체감한다. 이것은 물론 주관적인 체험 한계를 인정하는 제한적인 소감에 불과하긴 하다. 그 체험 한계를 인정하는 전제에서 좀더 이야기해보자.  

아주 상식적인 명제, 웹2.0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웹 패러다임이 '개방, 공유, 참여'의 가치를 지지한다면, 포털은  이 개방, 공유, 참여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는가, 그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책과 시스템 얼개들을 재조직화하고 있는가. 외피로서는 괄목할만한 성장과 시도들이 있었고, 현재도 그 시도들은 진행중이다. 네이버의 '뉴스 캐스트'와 '오픈 캐스트' 시스템, 그리고 그 보다 먼저 블로그의 대외적인 인지도를 한껏 끌어올린 '다음 블로거뉴스'(현 다음 뷰)는 개방성의 가치를 지지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여전히 포털의 욕망은 '가두리 양식장'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것은 상업적인 기업으로서 포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 수익을 높여줄 수 있는 최소비용 최대효율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포털이 웹을 매개로 유통되는 담론의 흐름에 지배적인 영향을 행사한다는 사회적, 공적 의미에서 판단한다면, 그저 사기업의 활동이기 때문에 방치되어야 하는가라는 적극적인 질문을 만들어낸다.

물론 사기업으로서의 정당하고, 자유로운 활동이 국가 정책이나 사회적인 압박을 통해 적극적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지만, 적어도 포털이라는 웹의 거대 담론 유통 권력은 그 지배적인 흐름에 저항하는, 그 지배적인 흐름에 창조적인 균열을 일으키는 새로운 형식들을 통해 분산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의 일부를 블로그가 담당해야 한다. 하지만 현지로선 이건 꿈꿀 수는 있지만, 실현할 수 없는 몽상이다. 블로그는 점점 더 포털의 영향권 안으로 포섭되거나, 끌려 들어온다.

특히나 '파워블로거'라는 허망한 이름을 욕망하는 블로거 상당수는 이런 포털식의 폐쇄적이고, 경쟁적인 욕망을 모방해 자신의 트래픽 강박증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그 자신, 포털이라는 거대한 권력과 욕망의 포로가 되어 간다. 물론 블로그 미디어의 역량을 가급적 크게 확장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건 당연하고, 오히려 권장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거기에 전체 웹생태계의 다양성에 대한 배려, 그리고 블로그가 발전해가는 좀더 거시적인 비전이 사상되어 있다면 이는 그저 기성 시스템의 폐쇄적인 욕망을 단순하게 새로운 형식으로 반복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2. 거대한 물결 : 광고판으로서의 블로그
블로그의 상업화는 그 자체로선 아무런 문제도 없다. 블로그의 상업화는 오히려 필요하고, 또 좀더 심도 있게 연구되어야 할 가치있는 주제다. 하지만 문제는 포털에 절대적으로 의존적인 웹의 제한적인 수익모델이 '가짜 목소리' 혹은 '위장된 목소리'를 확산하는 방식으로  블로그의 상업화를 유도한다는 점이다. 좀더 직관적으로 거칠게 비유하자면 많은 수의 블로그가 기성 상업자본의 '마케팅 이중대'로 전락하고 있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체감하든 체감하지 못하든 간에 이 흐름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물결은 앞으로 더 거대해질 것이다.

광고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광고를 광고 아니라고 우기거나 위장하는게 문제고, 그런 광고글들이 재미없고, 천편일률적인데다가, 장기적으로 보면 블로그의 개성을 몇 푼의 돈으로 침식시킬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즉, 블로그를 통한 광고는 블로그의 본질적인 기능(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알리는 일)에 포함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문제는 블로그의 본질요소라고 할 수 있는 블로거의 개성('진짜 화자의 목소리')이 마케팅의 대가에 종속되고, 변질될 수 있다는 위험이다.

그러니 광고글도 충분히 매력적인 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광고글, 광고블로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위해서라도 현재의 은폐/위장 구조는 곤란하다. 광고블로그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다만 그것은 블로그의 다양한 풍경들 가운데 하나이어야 하지, 지배적인 경향을 갖고 너도 나도 광고블로그로서 '돈 벌어야지'하는 현상은 여전히 경계되어야 한다. 블로그의 광고판화는 소위 파워블로그라고 분류되는 층위에서는 블로그의 미디어성을 침식하는 방향으로 기능하고, 대다수 평범한 블로그에게는 자신의 소박한 일상을 기록하는 대신에 아르바이트에 참여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식으로 블로깅의 가치를 수단화한다는 위험으로 존재한다. 특히 후자는 포털 검색엔진을 통해 해당 홍보상품 키워드 링크로 검색결과 페이지를 도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곤 한다. 이는 포털 검색엔진의 취약성에 대한 문제와 포털 검색 품질을 훼손하는 문제(의도적인 어뷰징)를 동시에 내포한다.

3. 위기인가, 가능성인가 : SNS, 마이크로 블록, 무선 웹시대의 도래.
기존 유선 웹에 중심한 웹 콘텐츠의 유통 흐름은 점차 무선웹에 기반한 소형 단말기 위주의 콘텐츠 유통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유선 웹이 여전히 주요한 웹 콘텐츠의 지배적인 유통 형식으로 자리할 것으로 나는 예상하지만, 무선 웹에 기반한 웹 컨텐츠의 유통 시장의 확장은 유선 웹에 기반한 콘텐츠의 성격에도 적극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존의 미투데이와 함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김연아를 통해 화제가 된 바 있는 트위터와 같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인맥 서비스) 성격이 매우 강한 마이크로 블로그의 득세 현상은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 속에서 순발력있고, 간편한 콘텐츠 교환 시스템으로서 마이크로 블로그는 모바일(무선 웹) 기기와 자신의 회로를 연결시키며 웹을 중심으로 하는 일상의 풍경들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갈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성급하게 긍정/부정의 가치판단을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또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확장한다는 차원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여기에 내포된 위험은 상존한다.

블로그에 문제를 한정하면, 기존의 다소 분량이 긴 문자 텍스트 위주로 생산/소비되었던 블로그 콘텐츠 생산 및 소비 경향은 적극적으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고 본다. 여전히 부피적으로 긴 문자텍스트로의 블로그가 완벽하게 자신의 영토를 빼앗기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일부의 우려처럼 급속하게 쇠락하지는 않겠지만,  무선 웹이 지배적인 경향으로 일상 속에서 자리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근미래에는 웹 콘텐츠의 파편화, 감성화, 시각화는 무시할 수 없는 흐름으로 기존의 문자 텍스트 위주의 '긴 글' 블로그 유통 시장을 침식해갈 것으로 예상한다. 이것은 위협인 동시에 도전이며, 가능성이긴 하다. 앞서 이야기한 위험을 새로운 도전으로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넋놓고 구경만 할 것인가. 항상 위기는 기회였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힘겨운 통과의례이기도 했다(참조링크 4번)

4. 결 : "우리가 '뉴스'라고 부르는 것들"
(아거의 표현)
앞서 아주 간략하고, 거칠게 블로그를 둘러싼 웹 환경의 변화와 블로그에 가해지는 위기의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블로그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저마다 대답을 가진, 그리고 그 대답들이 모두 각자에겐 진실인 열린 질문인다. 하지만 이 질문은 '블로그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적극적인 질문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블로그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가치지향적인 전제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둘러싼 다양한 성원들과 환경들의 변수들이 존재하고, 아직 블로그란 무엇이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케터는 블로그는 마케팅 수단이라고 강조할 것이고, 또 어떤 블로거는 기성언론의 지배적인 프레이밍을 교란하고, 거기에 저항하며, 궁극적으론 블로그에 바탕한 새로운 의제설정이 가능하게 하는 뉴미디어로서의 블로그가 함축한 가치를 강조할 것이다.

다만 아주 소박하게, 대부분의 블로거들에게 블로그는 그 자체로 자기회고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대화 시스템이라고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거대한 이슈와 유명인들만이 '뉴스'가 아니라, 우리들이 일상 속에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무수히 많은 작은 이야기들도 '어떤 누군가'에게는 진실로 스스로를 일깨우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뉴스'인 것이다. 그렇게 블로그가 다양한 풍경들을 갖고 서로에게 '영감과 정서적인 교감'을 주는 의미있는 콘텐츠로 작용할 수 있는 그 가능성, 그렇게 열려 있는 성찰과 회고의 기록으로서 기능하는 대화 시스템이라는 점은 블로그가 갖는 위대한 가능성이자, 쉽게 버려져선 안되는 가능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블로그의 이런 본질적인 가치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심각한 위기에 처할 공산이 커졌다. 다만 그 위기를 성급하게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 위기는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블로그가 어떤 형태로 진화하고, 진보하든 간에, 그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고, 또 그 도전을 창조적으로 수용할 수 있으냐에 따라 그 진화와 진보의 모습을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싶다.

- 블로그 수익 모델로서 자발적인 후원이 손쉽게 가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 즉, 블로그 미디어에서도 손쉽게 채택할 수 있는 '소액 결제 시스템'이 도입(써머즈의 글 참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블로그 미디어의 가능성은 현실적인 물적 기반 위에서 좀더 창조적인 시도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토양을 갖게 될 것이다. 즉, 독자들이 500원 천원을 쉽게 후원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 기존 메타블로그의 비효율적 시스템은 새로운 방식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현재의 메타시스템은 기성언론의 지배적인 관성인 핫이슈 중심의 집중화되고, 자극적인 이슈 틀짓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현재의 메타블로그 시스템은 고답적이고, 새로운 블로그 미디어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보다는 축소시키고 있다. 물론 블로그는 그 자체로 자신이 궁극의 메타다. 링크와 인용을 통해 블로거는 스스로의 미디어성을 조금씩 확장시켜야 한다.

- 블로그는 자발적인 연대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 무슨 블로그 이익단체를 만들라거나, 기업을 만들거는 소리는 아니지만,  블로그를 둘러싼 제도적인 문화적인 환경 변화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갖고 참여하고, 또 그 참여를 위해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런 활동들을 지원하는 비영리재단들과도 연대성을 강화하고, 그런 프로그램들을 좀더 개발해 현실적인 차원에서 함께 구상하고, 실천해갈 수 있다면 좋겠다.


* 이 글은 '616 이벤트, 블로거가 이야기하는 인터넷과 미래사회'에 송고하기 위한 목적도 더불어 갖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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