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 후퇴 막는다

‘포스트 민주주의’란 말이 운위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이런 단어가 공공연 하게 퍼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포스트 민주주의란 영국의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Colin Crouch)가 2004년 내놓은 저서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Post-Democracy. 그는 이 책에서 포스트 민주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법치 국가의 성격이 유지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도달하려 한 목적을 선출된 정부가 배신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규정하는 말.”

아마 이 책을 한 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포스트 민주주의라는 이 생소한 단어가 현재 한국의 상황을 너무나도 명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온전하게 남아있으면서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는 인상적 분위기. 그래서 포스트 민주주의의 도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포스트 민주주의의 도래?

통상 포스트 민주주의는 새로운 경제, 정치 복합체의 지배 엘리트 집단 등장, 대중을 동원하고 조정할 수 있는 정치 공학의 발전, 미디어의 영향력 증대 등을 통해 강화된다고 합니다.(<경향신문> 26일자 칼럼 여건종 교수)

오늘의 시국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참 많은 변수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공간 변수가 아닌가 합니다. 여건종 교수의 우려, 즉 포스트 민주주의의 도래는 분명 오프라인 공간에서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공간이 포스트 민주주의적 성격을 띤다고 해서 한국 사회 전체가 '그렇게 됐다'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저는 오늘의 이 시국을 온라인과 오프라인 광장의 이격, 괴리가 심화되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간 한국에선 들숨이 있으면 날숨이 있는 것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유기적으로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촛불 시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를 상기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온라인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구심점이 돼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규제를 통해 막을라치면 글로벌 서비스로 옮겨가 새로운 둥지를 틀고 다시 민주적 선언과 구호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자발적 동원의 근거지가 되고 있습니다. 트위터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발적 시국선언이 있었고, 정부의 온라인 규제를 향한 끊임 없는 담론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죠. 형법의 속지주의를 비웃으며 전 세계 시민을 상대로 정부의 비상식적 행태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온라인의 민주주의 담론은 오프라인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기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 당하는 ‘오프라인 한국‘, 하지만 ’온라인 한국’은 여전히 해방구와 같습니다. 이 온라인에서 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있고 틈새로 새어나오는 비상식의 흔적과 증거에 대한 정보들을 얻어가 공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 특유의 히피적 저항문화, 빛만큼이나 빠른 네트워크의 확산 속도(좀 오버스럽죠), 탈산업적 이데올리기, 반권위적 수평주의 등에 힘 입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집단지성이 온라인에서 잉태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란 대선 사례를 통해 이미 충분히 학습했고 이를 또 어떻게 우리식으로 활용할지도 정리했습니다.

온라인 상의 민주주의 학습, 오프라인으로 넘어올 것

이렇게 학습된 민주주의적 태도와 의식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 오프라인의 에너지로 질적 전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거를 비롯한 대형 이슈에 의해 폭발할 개연성이 높습니다. 트위터를 포함한 소셜 미디어의 급격한 성장이 통상 선거와 재난/재해의 발생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걸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현재를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 민주주의‘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이격이 심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오프라인은 포스트 민주주의의 도래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합니다.

이는 포스트 민주주의의 보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온도가 높아만 가고 있는 온라인 에너지의 유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봅니다. 머지 않은 시간 안에 온라인에서 학습된 민주적 역량이 오프라인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가 올 것이라고 저는 전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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